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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웅 변호사
6월 항쟁의 결과로 1987년에 헌법이 개정돼 이제 곧 30년이 되어간다. 현행헌법은 국민들의 참여와 희생으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결과물이며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상징이다. 그러나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나라의 시대적인 상황과 과제가 변화하였고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준도 높아졌다. 과거의 잦은 헌법개정이 대부분 권력자들이 초래한 정치적 혼란의 결과물이라면 이제는 현행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국민들이 개헌을 준비할 때이다.

 현행헌법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 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한 반면에 견제하고 책임을 추궁할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에게 끊임없이 측근이나 친인척 비리가 발생한 것은 대통령에 기생한 권력이 공직의 권한을 넘어설 정도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에서 독립돼 견제해야 하는 입법부나 사법부도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해 권력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확립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헌법 개정에서 반영돼야 하는 것은 권력구조 문제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다문화 사회에 접어들었음에도 헌법에 ‘민족’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다. 또 군인 등에 대한 이중배상 금지 규정과 같은 독소조항이 남아 있고, 국가원로자문회의 같이 사문화돼 필요 없는 규정도 있다. 통일과 대북문제에 대해서도 모순적으로 해석된다는 의견이 많으므로 통일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흔들림 없고 일관적인 통일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밖에도 국민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를 강화해 규정하고, 현대에서 특별히 보호돼야 하는 기본권에 대해서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

 헌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왔고 오랫동안 논의됐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개헌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말려 이용됐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을 공약으로 했었고 그 이전 정권에서도 임기 중 개헌을 제안한 바도 있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의 개헌 시도는 항상 정치적 목적이 앞선다는 논란이 수반되어 생산적인 토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는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 개헌논의를 시작하지 않고 임기 말에 이르러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레임덕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간주돼 순수성을 의심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아 헌법개정을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때가 됐다. 헌법개정이 시급한 시대적 요구이므로 개헌안에 대한 입장이 국민들이 대선주자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 대선주자들은 앞으로 차기정권에서 개헌을 추진해야 하는 사람들이므로 개헌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고 국민들의 논의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과거 개헌이 임기말에 추진돼 공약에 그친 것을 반성해 헌법개정 시기까지도 명확하게 공약에 반영해야 한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대선전에 헌법을 개정하자는 주장과 헌법개정에 대한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대선 전 개헌은 각 대선주자들의 집권전략과 연계 될 수밖에 없어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또 물리적인 시간이 너무 부족해 국민들이 토론하고 의사를 형성하기도 어렵다. 현실적으로 대선 전 개헌은 쉽지 않으므로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기보다는 구체적인 개헌안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국민들에게 평가받는 것이 옳다. 또, 헌법개정 논의 자체를 거부한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유력한 대선주자라면 헌법개정에 대한 입장과 구체적인 개정안, 개정 시기 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선 때 개헌안과 시기를 합의하지 못하면 이전 정권과 같이 개헌 자체가 좌절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헌법 개정이 대선 주자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의사도 대선주자들에 대한 인기도에 비례해 왜곡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헌법은 국민들이 만드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 국민들이 주체가 돼 헌법개정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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