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태어나 몇 년을 살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조선시대 등 그 옛날에는 60세를 넘기면 장수라 했다. 그러나 요즘은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삶의 질이 향상돼 100세 인생이라고들 한다. 물론 살다가 사고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어떤 여성은 좀 일찍 자식을 낳아 60대에 손자를 보고 할머니가 됐지만, 밖에서 ‘할머니’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하듯,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늙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의 인생은 10대를 거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생이 마감하는 그날이 올 것이다. 지금 불혹 중반에 들어선 나 역시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또 앞날을 생각하는 날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90세 인생으로 볼 때 인생의 반을 지난 이 시점에서 지금껏 무엇을 했는지, 앞으로 남은 반평생은 무엇을 하고 살지 등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언뜻 이런 말이 생각난다. 10대는 ‘철’이 없다. 20대는 ‘답’이 없다. 30대는 ‘집’이 없다. 40대는 ‘돈’이 없다. 50대는 ‘일’이 없다. 60대는 ‘낙’이 없다. 70대 ‘이’가 없다. 80대 ‘처’가 없다. 90대 ‘시간’이 없다. 100세 이후 ‘다 필요’ 없다.

 이 글을 본 순간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이상했다. 이 글에 맞게 인생의 한가운데에 선 한 사람으로 40대까지 온 지금, 철·답·집·돈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다. 일·낙·이·처 등이 없을 나이가 되면 어떻게 살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 막막함이 밀려온다.

 앞으로 ‘다 필요’없다는 시점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 나이까지 왔을 때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평가를 받기 위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물론 일·낙·이·처가 있는 삶을 살면 될 것이다. 이 삶 역시 어려울 수 있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삶은 아주 기본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어렵고도 쉬운 이 삶과 함께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뤘다는 성취감을 안고 삶의 끝자락에 선다면 그의 삶은 영원할 것이다. 앞으로 남은 자칭 반평생 동안 이전에 없었던 것은 잊고, 앞으로 다가올 삶의 한가운데를 다시 설정하고, 그 시점에 다가왔을 때는 지금처럼 허탈감보다 성취감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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