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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수필가
영화와 TV 뉴스 화면으로만 대해왔던 판문점을 다녀왔다. 버스가 비무장지대로 들어서자 오솔길처럼 뚫린 도로 양옆엔 글자도 선명한 ‘지뢰 매설’ 명찰이 가시 철망에 달린 채 방문객들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내고 있다. 폭설로 굶주린 날짐승과 들짐승들은 차량이 다가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를 찾기 위해 눈 속을 파헤치고 있다. 검문검색도 받지 않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생사를 초월한 채 비무장지대를 자유로이 뛰어다니는 들짐승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 만물의 영장이면서도 이데올르기의 노예가 돼 엄격한 규제를 자초한 인간상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판문점은 원래 현재의 자리에서 북쪽으로 1km에 있었던 네 채의 초가집과 조립식 막사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중공군 대표들이 쉽게 찾기 위해 지금의 자리에 주막을 겸한 가게(점포)로 옮기며 판문점이라고 명명했다. 이곳은 서울에서 63km, 평양에서 215km 지점에 위치하며 한국전쟁 발발 후 2년 19일 동안 1천76회에 걸친 회담이 열린 끝에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성사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유엔군과 북한은 판문점 주변 전후좌우 800m 지역을 공동경비구역(JSA=Joint Security Area)으로 설정하고 남과 북이 각각 6개의 초소를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남과 북의 경비병들은 이 지역 안에서만은 휴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으나 76년 북한군의 도끼만행 사건 이후 상대방 지역으로 일절 넘어갈 수 없게 됐다. 이 사건은 남한 측 지역에 세워진 북한 경비초소가 미루나무에 가려지자 남측이 감시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가지치기를 했고 이를 저지하던 북측 경비병의 도끼에 2명의 미군 장교가 살해당하고 4명의 미군과 4명의 한국군이 중상을 당한 돌발 사태였다. 당시 도끼 만행사건으로 피살된 미군 장교의 넋을 기리기 위해 판문점을 관할하는 유엔군 경비부대의 이름을 ‘보니파스 캠프’로 명명했다고 한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군사분계선 중앙에 위치하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무대이기도 하다. 다리 양쪽엔 남과 북의 초소가 세워져 있으며, 1953년 휴전 후 포로 교환이 이뤄졌을 때 이 다리를 건너 남쪽 혹은 북쪽으로 한번 방향을 선택하면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정전협정이 이뤄진 역사적인 현장인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을 방문했을 때 겉모습은 그동안 매스컴을 통해 수없이 접해왔던 명성과는 거리가 먼 초라한 양철지붕 막사였다. 옆으로 늘어선 양철지붕 건물 사이마다 중간 부분에 얕은 턱을 만들어 놓은 것이 민족을 분단시킨 군사분계선이며 이 둔덕 너머가 바로 북한 땅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영화 ‘공동경비구역’의 장면 가운데는 남측 경비병의 그림자가 둔덕을 침범했다며 이죽거리는 북측 장교의 사투리가 관객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고의든 사고든 한 쪽 발이 넘어가는 순간 총격전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지척의 눈앞에 가로놓인 군사분계선 둔덕인 것이다.

 회의실 내부엔 테이블이 동서로 길게 자리 잡고 있고 남과 북쪽엔 회담 당사자들이 앉는 의자가 놓여 있다. 테이블 중앙을 길게 나누고 있는 마이크 전선이 휴전선을 대신하지만 이 안에선 남과 북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마치 대기권 밖 우주선 안에서 유영을 하는 기분이다. 슬그머니 테이블 북쪽으로 자리를 옮겨 한반도 북쪽 땅의 체취를 느껴보는 순간 색다른 감회가 콧등을 시큰하게 울린다. 1년 내내 선글라스를 끼고 서있는 JSA 경비병을 가운데 두고 남측과 북측의 대표가 되어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서둘러 귀갓길에 올랐다. 버스가 공동 경비구역을 벗어나는 순간 손에 땀을 쥐게 했던 긴장이 풀어지며 새벽잠을 설친 육신은 죽음보다 깊은 수면의 나락으로 빠져 버린다.

 이제 우리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 오명을 벗어야 한다. 동에서 서로 이어지는 155마일의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동족끼리 더 이상 긴장의 총부리를 겨누어서는 안 된다. 2억1천157만여㎡에 이르는 비무장지대를 언제까지나 지뢰밭으로 잠재워도 안 된다. 남과 북의 철로를 잇는 공사가 하루속히 준공되고, 폭설로 꽁꽁 얼어붙은 통일로도 쉴 사이 없이 달리는 남북 차량의 타이어 열기로 녹아내릴 그날을 고대해 본다. 그때쯤 판문점은 동족상잔의 쓰라린 기억을 지워버린 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 장면으로만 우리 자손들의 가슴에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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