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모르고 지냈다. 학교라는 공동배움터를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거니와 이후 개인적으로도 학교와는 다소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탓이기도 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단어 자체만으로도 추억의 화수분인 ‘졸업식’을 몰아내고 대신 ‘졸업장 수여식’이라는 해괴망측한 의식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뒤늦게나마 이 같은 사실을 알게된 것은 ‘졸업식’의 대척점에 있는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최근에 있어서다. 아는 분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입학식이 잠시 화제가 올랐고 자연스레 졸업식으로 옮겨갔다.

 졸업식에 초청받을 위치에 있는 한 분이 어느 순간부터 절대 그 자리에 가지 않는다며 목청을 높였다. 이유는 앞서 언급한 대로다. ‘졸업식’의 자리를 ‘졸업장 수여식’이 꿰찬 것은 주객이 물구나무선거나 다름없다는 주장이었다.

 일리 있다. 개인적인 무심함 탓에 부지불식간에 ‘졸업장 수여식’이 ‘졸업식’을 잠식해버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주장은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도대체 누가, 언제부터, 왜 그랬는지 알아보기 위해 교육 관계자들에게 문의도 하고 인터넷 검색도 해봤지만 답을 구하기란 여의치 않았다. 추측컨대 대학의 학위수여식을 본따 품위를 높여보려는 속물근성이 작용한 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이 같은 뒤집힘은 옳지 않다. 글자 그대로 졸업식은 학생들이 졸업하는 행사인데 반해 졸업장 수여식은 교장선생님이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는 행사다. 학생들이 졸업하는 행사에서 졸업의 주체가 아닌 객체가 뭔가를 주도하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다. 수여(授與)한다는 말은 준다는 뜻이다. 주는 사람은 학생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이나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졸업장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상장도 수여함으로써 행사의 중심에 자리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학생들이 졸업하는 행사를 졸업식 혹은 졸업장 수여식으로 명명하는 법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졸업은 학생들이 하는 것이니 만큼 졸업생 이외의 모든 이들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축하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졸업장 수여식을 폐하고 졸업식을 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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