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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主筆>

절기 상 새봄을 알리는 입춘과 우수, 경칩이 다 지나 갔건만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봄이 와도 봄이 아니다(春來不似春). 우리는 어쩌다가 손수 뽑은 대통령을 탄핵 심판대에 세우고 개정(開廷) 시각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는지 한없이 부끄러운 춘삼월이다.

 모두(冒頭)에 밝혀두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는 곧 내려질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대한 선고 결과가 인용이든 기각 또는 각하이든 간에 이를 존중해 받아들이고 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느 쪽이든 불복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헌법재판소의 심판조차 부정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그렇게 된다면 법의 기능은 상실되고 무질서가 난무하게 될 것임은 뻔하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법치주의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헌재(憲裁)마저 무너뜨리는 민심(民心)이라면 그 민심은 옳다고만 볼 수는 없다.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불행한 사건에 대한 결정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다.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가 충돌 직전까지 멈추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지금 대한민국이 이러한 상황을 맞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연기할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반드시 선고해야 하는 현직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가 도입한 민주주의의 훼손 여부다. 지금까지 보여진 우리의 광장 탄핵 찬반집회 모습에서는 촛불이든 태극기든 양측 모두 헌재 결정에 승복할 수 있는 낯빛들이 아니다. 헌재 심판 결과가 자신의 생각과 합치되지 않으면 불복할 자세들이다. ‘승복’해야 함에도 아닌 듯하다. 모두 스스로가 헌재 판관이다. 자신의 주의 주장에 맞지 않으면 그 판결은 오판이라 한다. 하지만 헌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심판을 내려야 하고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국론은 양분돼 있다. 국토가 두 동강난데다가 국론마저 분열돼 있으니 통일을 운운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난제에 직면해 사안을 지혜롭게 풀지 못하고 파멸로 몰고 가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 한없이 미욱하고 모자라는 것 같아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지금 우리의 처지가 딱하다. 말 그대로 나라는 백척간두(百尺竿頭), 누란지위(累卵之危)에 처해 있다.

 필자는 탄핵 정국 초기에 본란을 통해 ‘예서 멈출 순 없지 아니한가!’ 라는 제하에 "어떻게 이어 내려온 우리 역사인가. 예서 끝낼 순 없다"며 국론 통합을 호소한 바 있다.

 지도력을 상실한 국가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우리나라다. 방향타(方向舵) 고장으로 표류하고 있는 ‘대한민국호(號)’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 숱하던 나라의 원로(元老)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하는 지사(志士)들이 없다. 어디로 자취를 감추었는가. 모두가 촛불 아니면 태극기란 말인가. 구국(救國)의 깃발 아래 뭉칠 순 없는가.

 우리가 겪었던 슬픈 역사는 두 번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되겠다. 한국전쟁의 참화로 나라꼴이 폐허 그 자체였던 1954년 섣달 그믐날 밤에 민족시인, 노산 이은상은 붓을 들었다. 그리곤 애국시(愛國詩) 한 편을 써내려 갔다.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위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 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피 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그 많은 탄핵 집회 중에 ‘대한민국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제하의 애국 격문(檄文) 하나 나붙지 않았던 촛불과 태극기 광장이었다. 나라가 위난에 처했는데도 침묵한다면 그것은 지식인의 취할 바 행동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각, 우리의 형국은 마치 촛불은 태극기를 태우려하고 태극기는 촛불을 끄려하는 태세다. 나라가 결딴난 후에 땅을 치고 애달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후회를 뒤에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데 뭉쳐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지난 어느 때보다도 국난극복을 위한 국민 모두의 지혜가 요청되는 때다. 내일이면 대통령 탄핵 사건을 심판하는 역사의 법정이 개정된다. 우리는 헌법재판소를 굳게 믿는다. 그러기에 헌재 판관들에게 당부한다. 역사가 굽어보고 있다. 오직 역사의 눈만을 의식하고 법과 정의에 따른 심판만을 내려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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