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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림 칼럼니스트 
일찍이 대항해 시대를 열어 합스부르크 제국을 구가했던 스페인의 국가 쇠퇴 원인은 무엇일까? 아스텍과 잉카제국의 문명을 파괴하고 살상과 약탈을 자행했던 스페인이 이들 사회의 멸망을 대가로 자국으로 가져간 금의 양이 1503∼1510년 사이에 19t에 달했다고 한다. 이 엄청난 양의 금 유입은 스페인의 통화팽창을 초래했고, 이러한 풍부한 자금은 식민지교역을 뒷받침할 금융발전의 필요성을 없애버린 독이 됐다. 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귀족세력들이 산업화를 막은 것이다. 이들은 식민지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신흥세력들에게 정치적 권력과 기득권을 빼앗길까 두려워해 그들이 추진하려는 산업화를 방해한 것이다. 그 대신 영토 확장을 위한 군사비로 국부를 탕진했다. 이는 후발주자인 네덜란드와 영국이 식민지교역으로 축적한 부를 토대로 금융과 제조업을 일으키고 산업혁명을 앞세워 대제국을 이룬 것을 보면 지도자의 통치철학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왕조와 봉건시대의 지배계층은 공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산업세력의 정치권력 접근과 자유를 허용하지 않으려고 사농공상이란 계급사회로 진입 장벽을 구축했다. 역사적으로 경제문제에서 자유가 없다는 것은 개인적이거나 정치적 자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전체주의나 사회주의체제의 계획경제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사회에는 분배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독재정부가 들어설 수밖에 없다. 정치사상가인 토크빌은 이를 우려해 "사회주의는 예속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한편 저명한 경제학자 하이에크는 2차 대전 이후 사회주의로 선회하려는 영국사회와 지식인들의 환상을 깨뜨리기 위해 쓴 「노예로 가는 길」이란 저서에서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중앙 계획하는 체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험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사회주의로부터 자유시장경제의 자본주의체제를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했다. 그의 예언적 통찰은 1989년 소련과 동구의 공산주의가 무너지자 사실로 증명됐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현상은 마치 사회주의체제로 치닫는 듯 불안감을 주고 있다. 탄핵사태로 나라가 어지러운 시점에 벌써부터 야당 유력 대선주자들은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경제공약은 크게 복지확대와 경제민주화로 요약될 수 있다. 좌편향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교과서로 떠받드는 복지모델국가는 스웨덴이다.

 그런데 스웨덴은 이미 복지국가의 실험을 끝내고 그 시스템을 개혁하고 있다. ‘제3의 길’이란 급진적 사회 민주주의를 표방한 스웨덴의 복지국가 운영은 1970년대에서 시작해 1990년대까지 지속됐다. 그들이 복지국가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이전에 높은 경제성장으로 국부를 탄탄히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지국가 전환 이후의 경제는 하강하기 시작했다. 1950∼2000년 사이 인구는 200만이 증가했으나, 민간부문의 창업과 고용 창출도 거의 이뤄지지 않아 대부분 공공부문에서 고용을 흡수했다. 오히려 부의 불균형은 복지 실시 이전보다 확대됐고, 이전에 높았던 기대수명과 국민의 신뢰도도 떨어졌다. 이러한 경제지표의 악화는 복지 확대와 이를 뒷받침한 세금 인상에 기인한 것이다. 결국 보편적인 경제원칙의 적용이 예외인 나라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선 때마다 등장하는 경제민주화를 생각해보자. 이들이 말하는 경제정의는 재벌개혁·해체이다. 재벌이란 가족경영 형태의 피라미드식 순환출자 기업집단을 일컫는다. 이런 기업 형태는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들이 많은 자회사를 소유하는 것은 불완전한 시장에서의 거래 비용을 줄이기 위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다. 또한 재벌기업의 사업 다각화는 수요급변이란 불확실성의 시장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기업이란 민주화가 목적이 아니라 성장과 생존에 유리한 구조를 갖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더욱이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감사선임분리제도 및 집중투표제 등의 상법개정안은 기업의 지배구조를 흔들어 외국의 기업사냥꾼들에게 먹잇감을 제공하는 창구가 될 수 있다.

 지금 세계는 미국을 비롯해 강대국들이 ‘자국우선주의’란 배타적이며 중상주의적인 경제정책을 가동하고 있는 반면, 이 나라는 ‘사회주의가 답이다’, ‘북한이 희망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대를 거꾸로 가는 나라가 되고 있다. 재벌을 해체하기보다는 경제자유화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을 10개나 100개 정도 더 만들어 고용과 국부를 창출하는 것이 더 현명한 산업정책이 아닐까? 이미 실패한 스웨덴의 ‘제3의 길’을 보면서도 무한복지 확대와 경제민주화로 사회주의체제를 선택한다면 결국 현자들이 말한 ‘노예의 길’로 가는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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