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김기룡 인천섬유산연구회 회장, 삼산고등학교장
소청도는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직선거리 180여㎞ 떨어져 있는 작은 섬으로 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을 타고 약 3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크기로 보면 백령권 도서(백령도·대청도·소청도)에서 가장 작은 섬이다. 하지만 지질학적으로 살펴보면 세 섬 중에서 가장 오래된 퇴적 기원의 변성암으로 구성돼 있다.

소청도를 구성하는 암석은 적자색 이암, 청색 이암, 황백색의 석회암 등이 지각변동을 받아 변성돼 생성된 점판암과 결정질 석회암 등이다. 소청도의 동남단 해안가에는 대규모로 노출된 백색 결정질 석회암이 있는데, 이곳을 ‘분바위’라고 한다. ‘분바위’라는 명칭은 여인의 얼굴에 분칠해 놓은 것 같이 하얗게 보이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일찍이 이곳 사람들은 분바위를 ‘월띠’라 불렀다고도 하는데, 이는 등대가 없던 시절 백색의 석회암이 달빛에 반사돼 야간에 뱃길을 안내해 주는 등대의 역할을 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분바위는 원나라 마지막 황제가 된 순제가 어릴 때 귀양 온 대청도에서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자주 찾은 장소로 알려져 있고, 소청동로 끝 지점에 마련된 분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분바위의 결정질 석회암은 암질이 좋아 일제 강점기부터 수십 년 전까지 건축 재료로 많이 채석돼 육지로 실려 나가 지금은 남아 있는 양이 현저히 적어졌다.

▲ 소청도 분바위 원경.
분바위는 현재 경관도 아름답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스트로마톨라이트와 남조류 화석의 산출지로서 자연사적 가치가 뛰어나 2009년 천연기념물 제508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분바위의 결정질 석회암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켜, 한 켜 자라난 굴 껍질의 성장선을 보는 것 같은 모양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남조류(시아노박테리아)의 광합성 작용을 받아 생성된 석회 성분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다.

그래서 소청도 주민은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들어 있는 암석을 ‘굴딱지 암석’이라고 부른다. 이 암석을 가공하면 매우 아름다워서 석공예품으로 제작·판매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최초 지하도로 알려진 광화문 앞 교보문고 지하도의 벽면에 부착된 암석이 바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들어 있는 소청도 분바위의 결정질 석회암이다.

소청도에서 가장 큰 예동마을에는 공소가 있고 마을 뒷산(당산)에는 김대건 신부 상이 서 있는데, 여기에 신부 상이 세워진 것은 청나라에서 신부 서품을 받고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조선으로 오다가 소청도 부근에서 폭풍우를 만나 소청도에 상륙해 천주교의 교리를 설파했던 것에서 기인한다. 김대건 신부 상 주변에는 150여 년 된 동백나무 군락지가 발달돼 있는데, 인근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된 대청도의 동백나무보다 수령이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교롭게도 김대건 신부 상 바로 옆에는 허름한 당집 하나가 있는데, 마을의 안녕과 어부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임경업 장군을 모신 당집이다.

▲ 서해를 항행하는 배의 길잡이 소청등대.
소청도의 남서단 해안가 구릉 위(83m)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소청등대(1908년)’가 있다. 소청등대는 서해의 서북해 일대와 함께 중국 산둥반도, 만주 다롄(大連)지방을 항해하는 각종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 왔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8·15 광복 후 오늘까지 숱한 우여곡절 속에 해상 휴전선의 등불이 돼 남북한 어민의 생명과 재산을 구해 온 소청도 등대다.

 소청등대가 일찍이 소청도에 설치된 이유는 인접한 대청도의 선진포구에 설치돼 있었던 일제강점기 일본 포경선단이 멀리 산둥반도 부근까지 고래잡이를 하고 돌아오는 항로를 안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현재 소청등대는 최근 리모델링해 설치한 등대로, 등대 위에는 관람객을 위한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소청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소청도 남쪽 해안의 비경과 북동쪽에 위치한 대청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소청서로를 따라 소청등대로 가는 산책로는 바다 위를 둥둥 떠서 걷는 듯한 기분을 자아낸다.

 소청도 중앙 남쪽 해안 기슭에 있는 ‘노화동’은 한때 소청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예동마을에 밀려 두 번째 마을이 됐다. 지난해 마을 담장에 소청도와 관련된 벽화를 새롭게 단장해 소청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조성해 놓았다. 또 마을 앞 해안가에 펼쳐진 몽돌해안과 몽돌해안 주변에 해식동굴, 시 아치들이 발달돼 있어 아름다운 어촌마을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 김대건 신부상.
소청도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로 유명하다.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 약 70%가 서해5도를 지나는데, 그 중 많은 새들이 소청도에 머물다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철새연구센터가 지어지고 있다.

 소청도는 수심이 깊고 물이 깨끗해 섬은 작지만 어획량이 풍부하며, 특히 동남단 분바위에 대규모로 자라고 있는 홍합은 매우 크고 맛이 좋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청도의 먹을거리는 철에 따라 다양하며, 음식점이 별도로 없으니 민박집에 미리 부탁하면 제철의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다.

 

▲ 예동포구 스트로마톨라이트.
# 소청도 분바위 전경과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소청도 분바위는 우리나라 최초의 생명체인 남조류(시아노박테리아) 화석이 산출되는 곳으로 자연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건축자재로 무단 방출돼 군데 군데 훼손 정도가 심하다. 보다 엄격한 보호 조치를 통해 귀중한 자연 자산을 지키는 데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소청등대

 소청등대는 우리나라에서 월미도 등대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등대로,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서해를 항행하는 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소청등대 전망대에 오르면 주변 대청도와 백령도를 비롯해 멀리 북한의 옹진반도와 장산곶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 동백나무 군락지.
# 동백나무 군락지

 소청도의 동백나무 군락지는 대청도에 비해 나무 개체의 크기나 규모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 소청도의 동백나무는 주민들의 각별한 관리 하에 매우 안정된 식생을 유지하고 있다.

 # 김대건 신부상

 공소 뒤편 동백나무 군락지에는 과거 소청도에 들러 은신했던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뜻에서 세운 동상이 있다.

 # 예동포구 앞 스트로마톨라이트 암석

 소청도 분바위 외에 예동포구 방파제 바로 앞 해안에는 노란색 띠무늬의 큰 암석이 서 있다. 이 암석 또한 남조류가 화석화된 스트로마톨라이트로 이뤄진 암석이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분바위 반대편 소청등대 동쪽 해안 절벽 아래에서도 일부 발견되고 있다.

<글=김기룡 인천섬유산연구회 회장, 삼산고등학교장>

정리=최유탁 기자 cyt@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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