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날인 3월 8일, 독일의 레겐스부르크시에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다. 제막식에는 불과 14세의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으신 안점순 할머니가 참석해 "앞으로 험한 세상이 없으면 좋겠다"는 말씀으로 축사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로써 미국, 호주, 중국에 이어 유럽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게 됐다. 이번 독일의 소녀상은 수원시민추진위원회가 시민들로부터 3천300만 원을 모금해 제작비를 마련, 독일 측의 협조를 받아 세웠다고 한다. 모쪼록 설립 취지대로 ‘비인간적 전범에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고, 피해 여성의 명예와 인권을 올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역사의 수레바퀴가 얄궂게 삐걱거리며 굴러간다. 북핵사태가 어느 때보다 위중하고 시급하지만 한국에 주한 일본대사는 없다. 지난 1월 9일 부산의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발, 귀국한 이래 아직껏 감감 무소식이다. 물론 잘못의 90% 이상은 우리에게 있다. 애초 일본과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참여와 진술권을 보장하지 않았고, 사망한 분들에 대한 피해 회복도 누락시켰다. 박근혜 정권의 ‘성급함, 경솔함, 불통’이 만든 실책이다. 그렇다고 딱 여기까지만 선을 그어놓고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일본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사실 소녀상에 대한 양국 간의 명시적·구속적 합의는 없었다.

 더욱이 ‘위안부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 문제는 피해자 전원의 자발적 참여가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정부 간 합의를 해도 피해자의 의사표시와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없다. 한마디로 소녀상 설치를 막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한일 간 역사를 돌아볼 때 소녀상 문제는 물리적인 시간의 경과에 맡기는 편이 최선일 듯싶다. 일본의 경우 어떤 내각에선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해도, 다른 내각이 들어서면 한국민에 비수를 꽂는 듯한 언행이 되풀이되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 모두가 시류에 따라 표변했다고 규정하는 것도 합리적이진 않다. 게다가 아베 내각처럼 자국민의 지지가 높고 정치·경제·외교 리더십까지 우리보다 월등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전략적 회피’를 통해 긴급한 현안부터 챙겨가는 ‘실용적 접근’이 훨씬 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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