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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범 아나운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후략).

 윤동주 시인의 ‘별헤는 밤’의 일부입니다. 이 시에서 ‘별’은 현재와 과거를 잇는 매개체가 된다고 합니다. 시공간을 초월해 동시에 존재하는 별의 상징성과 구원의 이미지를 통해 현재와 비교해 과거를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 사이의 거리감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별빛’입니다. 그리운 고향 땅과 이역만리 타향을 동시에 비추는 별빛,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비출 별빛.

 누구나 한 번쯤은 별을 헤아려 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인생에 가장 황홀한 별빛을 본 것은 생애 최초의 해외 출장을 갔던 어느 밤이었습니다. 청소년 160명이 대륙 탐험단이라는 이름으로 베이징을 거쳐 내몽고자치구의 초원과 사막 등을 탐방하는 보름 일정이었습니다. 저는 전 일정을 동행하며 현장 상황을 매일 생방송으로 연결하는 소위 캐스터 역할이었습니다. 베이징에서는 자금성, 이화원, 만리장성 등 이름난 관광명소를 둘러보았을 뿐 아니라 중국 서민들의 삶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며칠 후 베이징에서 당시에 가장 빠른 열차를 타고 12시간을 북쪽으로 내달린 끝에 당도한 내몽고자치구에서의 열흘간 일정은 훨씬 더 흥미로웠습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사막에서의 체험이 일행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특히 초원지역에서는,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유목민들의 이동식 집인 게르(ger)에서 사흘간 묵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방송 초년병 시절이라, 맡고 있던 그 프로그램을 선배들에게 대신 하게 하기가 어려워서 보름치를 모두 녹음하고 왔었습니다. 초원에서의 첫날,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여행에서 쌓인 피로를 풀면서 게르 안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송 시간이 되어 라디오를 켜고 게르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저는 황홀경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쏟아져 내릴 듯한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때마침 흘러나오던 내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 시각과 청각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장관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다시 체험해 보고픈 순간입니다. 그 이후로 밤하늘에 별을 몇 개나 셀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저는 ‘개수를 셀 수는 없고 까만색보다 흰색이 더 넓다’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날 밤 이후 별은 제게 좀 더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배운 대로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저 별빛은 수천 수만 년 전에 출발한 것’이라는, 감히 계산할 수 없는 우주적인 스케일 때문에 별을 볼 때마다 더욱더 경외심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윤동주 시인의 시에서처럼 시간과 공간을 잇는 역할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게 됐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저 별빛을 현재의 다른 누군가도, 그리고 과거의 또 다른 누군가도 경험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별빛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초원에서 황홀한 별빛을 만났던 그 밤으로부터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별빛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밤이 또다시 시작됐습니다. 경인방송 (FM 90.7MHz) 봄철 프로그램 개편에 따라, 정들었던 ‘상쾌한 아침 원기범입니다’를 떠나 ‘원기범의 별빛 라디오’ (매일 밤 10시-12시)를 새롭게 진행하게 됐습니다. 별은 희망이고 노래이자 미래입니다. 정작 별을 우러러 볼 여유가 없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별빛처럼 희망을 주고, 사랑을 드리고 싶은 프로그램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을 싣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달려갑니다. 별이 그리운 분들은 와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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