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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대표되는 공연예술의 기원설은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다. 그러나 인류 탄생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공연예술의 출현은 주로 세 가지 기원설과 함께 한다. 우선 풍요를 기원하는 종교적 제의식설과 즐거움을 위한 유희설이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욕망 또한 공연예술의 시작을 알린 기원설에 포함된다. 어릴 적 할머니나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기다렸던 것처럼 공연예술의 시작에는 이야기에 대한 열망이 자리잡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 ‘인 더 하우스’는 바로 그런 재미난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끝 모르는 탐닉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현재 스페인을 대표하는 극작가인 후안 마요르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연극 ‘맨 끝줄 소년’을 영화화한 것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프랑스 감독 프랑소와 오종이 연출했다.

한때 작가를 꿈꿨던 제르망은 자신에게 창작적 소질이 뛰어나지 않음을 직시한 문학교사이다. 20년째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제르망은 새 학기마다 절망에 신음한다. 학생들의 간단한 작문과제를 읽을 때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의 빈곤한 문장력에 절로 한숨이 쉬어진다. 그렇게 과제를 살펴보던 중 제르망은 시선을 잡아 끄는 글을 발견하게 된다. 클로드라는 남학생이 쓴 글에서 작가적 재능을 간파한다. 비록 클로드의 글은 관음적이며 야릇한 측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건 우선 문제될 게 없었다. 그렇게 교사 제르망은 있지도 않은 방과 후 수업을 자처하며 클로드의 문학적 역량을 키우는 데 매진한다.

그런데 제르망이 클로드가 집필하는 이야기에 지나치게 빠져들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사실 클로드가 써 내려가는 글은 관찰과 상상의 중간 즈음에 위치하는 이야기로, 친구의 어머니에 대한 미묘한 감정에서 출발한 글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제르망은 더 강렬한 갈등 구조를 원하게 됐고, 매주 연재되는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교사로서의 도덕적 양심마저 거스르는 행동도 서슴지 않게 된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다 보니 이야기와 현실 사이의 경계가 무너져 어디까지가 허구이며 어디가 사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영화 ‘인 더 하우스’는 라파엘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이 클로드라는 관찰자의 개입으로 특별하게 재해석되는 액자 형식의 구조를 띠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다시 관객들을 만나 또 다른 이야기로 확장되는 신선한 전개를 선보인다. 현실과 허구의 불분명한 접점은 클로드의 이야기를 접하는 영화 속 제라드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작용하며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욕망과 상상력을 분출케 한다. 이 영화는 자신이 가진 서사보다 더 멀리 나아가며 새로운 자극으로 관객을 이끈다. 이로써 이 작품은 완벽한 일탈을 가능케 한다. 예술 창작의 시작점에 스토리텔링이 있다면 예술 향유의 출발점에는 즐거움과 일탈이 있다.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하는 일탈적 측면에서 이 작품은 영리하고 세련되게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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