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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흔히 잘나가는 사람들의 사무실 벽에서 값비싼 미술작품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런데 ‘강철왕’으로 불리는 카네기의 사무실에는 예술적 가치가 전혀 없어 보이는 그림 한 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썰물 때의 황량한 모래사장에 나뒹굴고 있는 외로운 나룻배 한 척과 노가 그려진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는 ‘밀물은 반드시 온다!’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와 아마추어가 그렸을 법한 처량한 그림 한 장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요. 사연은 이랬습니다. 카네기의 젊은 시절은 무척 가난해서, 집집을 다니며 행상을 했었는데, 어느 노인의 집에서 이 그림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무엇보다 그림 밑에 있던 글귀가 청년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동안 그 글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다시 찾아가 부탁을 하니 노인이 선뜻 그림을 주셨다는 거예요. 세월이 흘러 최고 갑부가 된 카네기는 자신의 거실에 그 그림을 걸어놓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주곤 했습니다. "나는 이 그림을 언제나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둡니다. 그리고 어려움이 밀려와 내게서 무언가를 휩쓸어갈 때마다 이 그림을 보면서 다짐하듯 내게 말하곤 했습니다. ‘밀물은 반드시 온다!’라고 말입니다."

 나라 안팎이 무척 어렵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강국들의 세력다툼과 북쪽의 도발, 그리고 우리 내부의 균열된 모습이 좀처럼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 때면, 카네기의 사무실에 걸린 썰물 때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나룻배 한 척과 그 밑에 적힌 글귀가 떠오릅니다. 그런 생각의 끝에 문득 ‘우리에게 밀물은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밀물이 오면 외롭게 지내던 나룻배는 덩실덩실 춤을 출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썰물이라는 위기는 우리의 의지가 개입될 수 없는 ‘외적 위기’와 우리의 의지가 개입될 수 있는 ‘내적’ 위기가 있을 겁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내적 위기’이겠지요. 바로 갈라진 균열을 치유하고 다독이는 일일 겁니다. 그러려면 용서하는 마음과 기다리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야 진정한 통합이라는 밀물이 밀려올 테니까요.

 링컨 대통령은 자신을 ‘저질광대’라고 비아냥거리고 ‘고릴라’라고 폄하하던 스탠턴을 장관으로 기용했습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위기상황에서 시도 때도 없이 대통령을 비난하던 그의 장관임용은 커다란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내 판단으로는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스탠턴뿐이라고 확신한다"면서 그에게 신뢰를 보냈고, 결국 승리했습니다. 얼마 후 링컨이 괴한의 총탄에 쓰러지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모두가 언제 날아들지 모를 총탄을 피해 숨었을 때, 스탠턴은 쓰러진 링컨에게 달려가, 그를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렇게 외치면서 말입니다. "여기에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가 누워 있습니다."

 ‘적’을 ‘벗’으로 만든 위대함의 뒤에는 이렇게 ‘용서’라는 관대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다림’이라는 여유로움이 있었습니다. 이때 서로 다른 생각들을 가진 우리가 하나가 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마치 각각의 색들을 섞지 않고도 아름다운 형상을 유지하는 무지개처럼 말입니다.

 허영자 선생님의 ‘완행열차’라는 시를 전합니다.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 천천히 아주 천천히 /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많이 힘들어하는 지금입니다. 그러나 ‘밀물은 반드시 온다’는 글귀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됐으면 합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있고, 그래서 기다릴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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