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수원시에서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30여 명이 모여 "보건복지부의 개편안은 이름만 바뀐 장애등급제로 졸속행정에 불과하다"며 개편안 3차 시범사업과 장애등급제의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같은 날 구미, 대전 등에서도 해당 지역의 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같은 주장을 하며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이들 단체가 주장하는 요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장애등급제는 비인권적이며 장애인 차별을 가속화하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것. 장애인에 대한 복지서비스는 등급이 아닌 그들이 처한 여건과 욕구에 따라 지원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등급 단순화가 개편안의 본질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방문조사를 통한 서비스 종합 판정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더 주겠다는 것이다. 지난 2차 개편안의 경우 지원제도를 잘 알지 못하거나 관련 기관을 찾아갈 수 없어 서비스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장애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내 이를 해결한 점도 나름 인정받을 만하다. 하지만 관련 시설과 기관, 복지설계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공급이 지금처럼 수요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선 결국 전시성 행정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많다. 게다가 현행처럼 장애등급을 단순하고 넓게 만들어 버리면 오히려 맞춤형 복지서비스가 어려워질 수 있다.

 비록 장애의 항목이 동일하고 그 정도가 동급이라 하더라도 기대 서비스는 천양지차로 표출될 수 있다.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고, 인간으로서의 욕구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원칙은 ‘복지서비스 전달체계가 공급자인 정부가 아니라 이용자인 장애인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현재 운용되는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제도도 장애인 이용자의 권한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예컨대 서비스에 해당하는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직불제 방식으로 전환, 선택권·통제권을 완전하게 장애인 본인에게 넘겨줄 필요가 있다. 독일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의 유형과 정도, 개인이 처한 환경과 욕구’에 따라 개별적인 맞춤형 급부를 제공하고 있다. 동시에 사회보장·사회부조를 통한 생계시스템도 강화하는 등 장애인에 대한 안전망도 이중 삼중으로 겹겹이 구축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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