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지난해 11월 초부터 ‘인천 개발사업 흑역사’라는 주제로 총 14편에 걸쳐 인천 지역에서 추진된 대규모 투자유치사업과 도시개발사업을 점검하는 기획을 진행했다.

 1999년 시작된 ‘에잇시티’를 비롯해 2002년 ‘송도국제업무단지’, 2006년 ‘미단시티’, 2007년 ‘로봇랜드’, 2010년 ‘송도랜드마크시티’에 최근 무산된 검단스마트시티까지 수조 원에서 수백조 원에 달하는 사업들이 ‘개발’이라는 명분 하에 장밋빛 청사진만 남발했다. 그 결과 이들 대형 프로젝트는 대부분 자취를 감췄고, 그 파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본보는 이번 기획의 마지막 편인 전문가 좌담회를 통해 지역에서 추진된 다수의 투자유치 및 도시개발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 보고, 향후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언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인천 개발사업 흑역사 전문가 좌담회는 지난 22일 인천시의회 의원총회의실에서 열렸다. 한동식 본보 정치부장이 사회를 맡은 좌담회에는 이종원 인천시 투자유치산업국장, 이한구 인천시의원, 김송원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 강희찬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김천권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이병기 본보 기자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토론자들의 주요 발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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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규모 투자유치사업과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했지만 대부분 무산되거나 지금까지 지연되고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이한구 의원=과도한 개발 목표가 문제였다. 인천이 대한민국 경제자유구역 1호로 지정되면서 개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커진 반면 세계 경기의 불확실성과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는 간과했다. 선출직 시장들은 투자유치·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정확한 현실 진단 없이 장밋빛 전망만을 내세웠고 시민들의 욕망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헛된 꿈에 부푼 시민들을 방치했다.

▶김천권 교수=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했다. 일례로 에잇시티와 밀라노디자인시티 사업은 수많은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이 시작부터 안 되는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인천시는 사업을 추진했다. 에잇시티의 경우 사업비가 317조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한 해 예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하지만 ‘현실성 없다’, ‘타당성이 없다’는 의견은 무시당했다. 인천시는 끊임없이 사업을 남발했고, 추진했고, 실패했다.

▶김송원 처장=사업계획이 쉽게 변했다. 어마어마한 비용이 투입되는 사업임에도 충분한 절차나 의견 수렴 없이 사업계획이 확정됐고 변경됐다. 영종도 내 대규모 개발사업의 경우 시장이 바뀌면서 사업계획 방향이 변경됐고 사업주체도 바뀌었다. 최근 검단신도시에 두바이 자본 4조 원을 끌어오겠다는 검단스마트시티 조성사업도 시장이 대통령과 두바이를 갔다 오고 나서 갑자기 시작됐다. 시민사회단체나 전문가 의견 청취는 없었다. 사전 검증 없이 사업이 시작됐고 결국 우스운 결론이 났다.

▶강희찬 교수=세계경제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고성장의 시대는 이미 끝났고 저성장 ‘뉴 노멀(New Normal) 시대’가 도래했지만 대비하지 못했다. 저성장·저물가·저금리가 새로운 일상(Normal), 새로운 기준(Normal)이 됐지만 여전히 고층 빌딩을 세우는 일에만 열을 올렸다.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으니 투자유치나 도시개발사업 방향이 제대로 잡힐 리 만무했다. 사업계획은 계속 수정됐고 방향을 잃은 사업은 동력을 잃고 표류하고 말았다.

▶이병기 기자=단체장의 치적 쌓기에 불과했다. 검증되지 않은 사업을 놓고 장밋빛 미래만 제시했던 것이다. 송영길 시장은 2012년 서울 신라호텔에서 떠들썩하게 ‘에잇시티 마스터플랜 및 선도사업 투자발표회’를 열었다. 유정복 시장은 지난해 검단스마트시티 협상이 타결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16 스마트시티 코리아 출범식’에 참석했다. 시민들은 그 과정을 지켜봤고 기대도 품었다. 그러나 실패했고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실패 원인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면, 인천에는 송도·영종·청라 등 경제자유구역이 있지만 외자유치는 요원하다. 아파트만 즐비한 국제도시라는 오명이 따라다니기도 한다.

▶김 교수=첫 단추부터 잘못 끼어졌다. 인천 투자유치 사업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이유는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안 돼 있었다는 데 있다. 개념 정립이 명확하지 않으니 그 위에 세워진 개발계획 역시 자주 흔들렸다.

경제자유구역 지정에 앞서 최기선 시장은 송도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신도시는 고밀도 아파트가 들어선 곳을 의미했다. 땅이 많은 인천에서 굳이 갯벌을 매립해 신도시를, 아파트만 들어찬 도시를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시작부터 송도는 신도시가 아닌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를 이끄는 선도 도시로 개발됐어야 했다. 경제자유구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을 바탕으로 송도 개발계획을 수립했어야 했다.

▶강 교수=우리나라 경제자유구역제도는 지자체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가 갖고 있는 산업적인 특성을 기반으로 자율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정부가 정해 놓은 큰 틀에 각각의 경제자유구역을 끼워 맞춘 뒤 부분적으로 제한을 풀어주는 식이었다. 또 경제자유구역이라고 말하기에 부끄러울 만큼 교통인프라가 미흡했다. 인천에는 공항과 항만이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타 지역과의 접근성이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다. 고립돼 있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말이다. 교통과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가 빠르게 구축되지 않는다면 투자유치·도시개발사업은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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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개발 흑역사 전문가 좌담회가 22일 본보 주최로 인천시의회 의원총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인천 개발사업 흑역사로 꼽히는 사업 중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

▶김 처장=용의·무의 개발사업이다. 처음과 달리 카지노사업으로 변질됐다. 결국 카지노 하려고 용유·무의를 개발했느냐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사업에 대한 중·장기적인 정책 부재가 이 같은 ‘땜빵’식 투자·개발사업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이 의원=검단신도시 조성사업이다. 검단 땅을 매각할 수 있는 황금 시기를 놓쳐 손실 규모가 1천억 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중에 검단스마트시티 조성사업이 끼어들어서다. 검단스마트시티는 이미 타 지자체에서 추진됐으나 무산된 전례가 있었다. 그럼에도 인천시는 검증이 안 된 사업에 뛰어들었고, 시민들에게 또다시 환상을 심어 줬다. 하지만 끝내 무산됐다.

 ▶김 교수=밀라노디자인시티 조성사업이다. 디자인 전시산업의 메카인 이탈리아 밀라노를 영종하늘도시에 그대로 옮겨 아시아의 디자인 전시산업 중심지로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인천에 디자인 교육 인프라가 있나, 디자인산업이 발달해 있나, 디자인산업 클러스터가 조성돼 있나. 그렇지 않다. 지역에 디자인산업 관련 기반이 하나도 없었다. 지역의 기반조차 없는 산업을 가지고 무슨 사업을 한다는 것인지. 당시 전문가들은 200%로 실패한다고 장담했었다.

 ▶강 교수=로봇랜드, 수도권매립지 복합테마파크 조성사업이다. 인천시가 그동안 추진했던 사업을 보면 레저 인프라 조성과 관련된 부분이 많다. 여기에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에 사계절이 있다는 사실이다. 레저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레저산업이 활성화된 곳을 살펴보면 1년 내내 날씨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오프시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보통 겨울이 4∼5개월 동안 지속되고 그 기간 동안에는 자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테니 투자기업으로서는 이 같은 상황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인천의 투자유치·도시개발사업의 발전 방향에 대해 한마디씩 해 준다면.

 ▶김 처장=왜 지자체가 투자유치와 도시개발사업에 목숨을 거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바로 지방정부의 재정구조 때문이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보면 8대 2다. 세금 중 20%만이 지방정부의 몫이란 소리다. 때문에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또 지방세 대부분은 부동산 취·등록세가 차지하고 있다. 이런 탓에 인천뿐만 아니라 타 지자체도 똑같이 투자유치와 도시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래야만 재원이 늘어나니까 말이다. 인천의 발전 방향을 말하기에 앞서 지방분권, 특히 지방정부의 재정분권이 이뤄져야 하고 동시에 지방세 구조를 다각화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사업 발전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강 교수=더 이상 베드타운이 아닌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도시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생산과 소비가 활발해지면 인천에 오지 말라고 해도 투자유치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천이 갖고 있는 역사적 배경과 문화자원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갯벌의 가치를 살려야 한다. 미래에 갯벌만큼 인천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본다. 이제라도 대규모 간척사업을 중단하고 환경을 고려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여기에 저성장 시대에 돌입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과 지자체 특성을 살리는 개발계획이 마련돼야 한다.

 ▶김 교수=300만 거대 도시를 위한 싱크탱크를 만들어야 한다. 프랑스의 한 도시의 경우 100∼150명의 전문가들이 도시 청사진을 만들고 15∼20년 동안 모니터링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브라질의 한 인구 300만 도시에는 도시개발 연구진만 100명에 이른다. 그러나 인천발전연구원의 연구진은 40명도 안 된다. 그만큼 사전 검증장치가 미약하다는 뜻이다. 또 지역사회 거버넌스가 구축돼야 한다. 관 주도 행정이 아닌 산업, 대학, 연구소,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시스템 안에서 투자유치·도시개발사업이 논의돼야 한다.

 ▶이 의원=여전히 공공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주민들을 내쫓는 사업이 행해지고 있다.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가 특히 그렇다. 쾌적한 삶을 살고자 하는 꿈을 악용해서 이권을 챙기는 것은 안 될 말이다. 뉴스테이에 들어가려면 3.3㎡당 800만 원을 내야 하는데 보상가는 3.3㎡당 400만 원에 불과하니 재정착을 할 수 없는 구조다. 기업형 임대주택이 아닌 공공임대주택을 늘려야 한다. 집 없는 사람 누구나 집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0여 년간 추진된 각종 사업에 대한 전문가들의 다양한 지적이 있었다. 인천시 투자유치산업국장으로서 인천 투자유치·도시개발사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말한다면.

 ▶이종원 국장=1%의 가능성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했다. 에잇시티도, 검단스마트시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투자자는 수익성이 확실히 담보되지 않으면 사업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투자에 나섰다가 수익이 나지 않으면 보상을 받을 수 없어 조심스러워 한다. 그래서 땅값을 싸게 가져가려고 한다. 거의 공짜로 아니면 40∼50년 무상 임대로 말이다. 그러나 땅값을 싸게 주면 특혜라는 지적이 곧바로 나온다. 사실상 특혜 없는 투자유치사업은 있을 수 없는데도 말이다. 또 투자유치사업에 있어 사전에 시민사회와의 충분한 교류를 요구하는데, 투자유치는 비밀 유지 협약상 정보를 공유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제도적인 문제도 있다. 1982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이다. 수도권 지역의 인구과밀화를 방지하고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 발전을 위해 만든 건데 지금은 수도권을 옥죄고 있다. 여기에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도 개정을 앞두고 있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투자기업의 지분 비율을 기존 10%에서 30%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인천은 수도권정비법에 경자법까지 더해져 투자유치가 더 어려워지게 된다.

 그럼에도 인천의 송도·영종·청라 등 경제자유구역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곳임이 분명하다. 또 인천의 역사와 문화자산을 간직한 원도심은 빠지지 않는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앞으로 인천시는 투자유치·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지금보다 더 전문가의 고견에 귀를 기울이고 늘 소통하는 자세로 임하겠다. 저성장 시대에 들어선 만큼 고밀도 개발은 지양하고, ‘선 계획 후 개발’ 원칙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도시 인천을 건설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정리=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사진=최민규 기자 cm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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