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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몇 해 전 충청도의 한 작은 사립 학교가 큰일을 냈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 일이 있었다. ‘재미있는 학교로 만들었더니 가장 잘 가르친 학교’가 됐다는 것이다. 그 학교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해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무탈하게 유지해 오던 그 학교에서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게 된 것은 새로 부임한 학교장의 별난 교육 방법 때문이었다. 학교장이 처음 시도한 것은 대학 합격률을 높이기 위한 학력향상 대책이 아니라 예체능 활동이었다고 한다. 기초학력은 바닥인데다가 성취의욕도 전혀 보이지 않던 학생들에게 동기를 심어주기 위한 궁여지책(?)이 아니었나 싶다. 우선 책상에 앉아 있기조차 싫어하던 학생들에게 축구, 야구, 에어로빅 등과 같은 체육활동을 즐기게 해서 일단 학교가 즐거운 곳이라는 생각을 심어 줬다. 체육활동 후에는 함께 노래하고, 악기도 연주하고, 산에도 오르면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친밀도를 높여 갔다. 그러면서 상위권부터 기초학력에도 못미치는 최하위권까지 철저하게 수준별 맞춤형 수업을 시행했다. 그러다 보니 학력신장은 자연스레 뒤따라 오더라는 것이다. 그 결과 졸업생의 9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쾌거를 이뤘고 미국의 주립대학교와 자매결연까지 맺어 농촌 학생들에게도 유학의 꿈을 꾸게 만들었다고 한다.

 "학교는 재미있어야 합니다. 일단 성취 동기를 자극하니 학생들의 잠재능력이 깨어나더군요" 큰일을 낸 학교장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최근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보도돼 관심 있게 살펴본 일이 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많고 학력 상위권과 하위권 격차가 큰 소위 문제 학교가 놀라운 성과를 냈다는 기사였다. 교복조차 챙겨 입지 않고 등교하거나 일과가 끝나기도 전에 집에 가버리는 등 학교 생활에 의욕을 잃은 학생들이 많던 그 학교가 사고(?)를 친 것도 역시 앞의 사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 고장의 학교에서는 즐거운 학교,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가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을까?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겠지만 눈에 띄는 것은 인천형 혁신학교라고 하는 ‘행복배움 학교’ 이다. 경기도교육청에서도 비슷한 내용과 형식을 지닌 혁신학교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다. ‘함께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가자’는 아주 좋은 의도로 시작했음이 분명하다.

 이들 학교는 교육청에서 정해진 틀을 제시하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과제 중심으로 학교가 자발적으로 학생, 학부모와 협력적 관계를 통해 운영하기 때문에 학교마다 만들어 가는 모습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학습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져 학습 부진학생 비율이 줄어들고, 학교 폭력이 감소했으며, 미래형 학력인 학생의 협업능력·소통능력·창의적 사고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누가 보더라도 좋은 취지임이 분명한 ‘함께 만들어 가는 행복한 학교’가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통계 수치만으로 보면 다소 뜻밖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기도는 전체 초중고등학교의 18.6%에 이르는 435개 교가 혁신학교인 반면 인천은 전체 학교의 6%에 불과한 30개 교만 인천형 혁신학교인 행복배움 학교로 지정돼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경기도는 초등학교 18.8%, 중학교 23.5%, 고등학교 11.5%가 혁신학교인데 비해 인천의 경우에는 초등학교가 전체의 8%에 불과한 20개 교, 중학교는 7%인 9개 교일 뿐이다. 게다가 전체 125개의 고등학교 중 행복 배움 학교는 영종지역 학교 단 1개 교에 불과하다. 교육청의 일방적 지시 없이 학교의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협력적 관계를 통해 행복학교를 만들어갈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효율적이고 즐거운 일이 어디 있을까?

 시작한 지 3년차가 된 지금쯤이면 많은 학교와 교직원, 학부모들이 나서서 우리도 혁신학교, 행복배움학교로 지정되길 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보면 매년 학교 수도 늘어나야 정상일 것 같은데 학교 현장의 사정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주객전도(主客顚倒)라는 말이 있다. 주인과 손님이 뒤바뀌었다는 뜻으로 중요 정도에 따라 주(主)가 되는 것과 부수적(附隨的)인 것의 순서나 앞뒤가 바뀐 경우를 말한다. 혁신학교, 행복배움학교 정책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이나 방법이 본래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학교 구성원들을 힘들게 하고, 행복할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은 없는지 되돌아보고 다시 한 번 세심하게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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