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에 석(石)이라는 도편수 이야기기 나온다. 석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제나라를 여행하다 곡원이라는 마을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거대한 상수리나무가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시했다. 이 나무가 얼마나 크던지 굵기는 백 아름이 넘었고 높이는 산을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였다. 또 그늘 아래에선 소 수천 마리가 쉴 수 있었고 수십 갈래로 뻗은 가지로는 배 한 척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마을에는 이 나무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석의 제자들도 숨을 죽이며 이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석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나무를 지나쳤다. 제자들이 석에게 묻는다. "저렇듯 훌륭한 재목은 처음 봅니다. 한데 어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지요." 석이 답한다. "저 나무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을 것이요 가구를 만들면 금세 부서질 것이며 기둥을 삼으면 벌레가 슬 테니 쓸모없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이렇게 크고 오랫동안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건 다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석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날 밤, 잠을 자는데 상수리나무의 온이 꿈에 나타나 말한다. "너는 나를 무엇과 비교해 무용지물이라 하는가? 어찌하여 나를 인간에게만 필요한 나무와 비교한단 말인가. 배나무와 유자나무는 열매를 맺으니 너희 인간에게 도움이 되겠지. 그러나 열매가 달리기 때문에 가지가 잘리고 쪼개져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세상 사람이나 사물 모두 유용해지려는 어리석음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이지. 하지만 나는 다르네. 지금까지 오히려 무용지물로 살려고 노력해왔네. 천수를 다한 지금에서야 겨우 무용한 나무가 됐지. 만일 내가 유용했다면 오래전에 잘렸을 걸세."

우리는 늘 좀 더 나은 것을 찾고 좀 더 높이 오르려 애쓰며 산다. 그만큼의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노력 없이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과 같다. 과도한 욕망보다 더 큰 참사가 있을까? 불만족보다 더 큰 죄는 있을까? 또 탐욕보다 더 큰 재앙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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