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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계봉 시인
꼬박 1천73일이 걸렸다. 미처 눈물 흘릴 틈도 없이 도둑처럼 찾아든 죽음, 속수무책이었던 매정한 물결 너머로 부표(浮漂)처럼 떠다니던 죽은 이들의 마지막 웃음소리, 멈춰진 시계와 함께 수장된 그들의 꿈, 그들의 노래, 그들의 환한 인사들이 견고한 모멸과 분노의 시간을 뚫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까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세월호 참사 당시 제대로 된 초기 대응을 하지 못한 무능한 대통령이 탄핵돼 삼성동 사저로 돌아간 지 십여 일만의 일이었다. 한 시대의 권력이 종언을 고하는 순간 감춰진 진실을 가득 품고서 비극의 ‘세월호’는 세월을 거슬러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모로 드러눕긴 했지만 비교적 원형을 유지한 채 세월호가 인양되자 이렇게 ‘쉽게’―기술적 어려움들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고(忍苦)의 시간이 지난했음에 대한 상대적인 표현이다―올라올 수 있었는데 도대체 정부에서는 3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무엇을 했느냐는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동안 청와대와 여당의 일부 정치인들, 눈과 귀를 막아버린 보수단체 회원들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얼마나 모욕하고 능멸했는가. 시체장사를 그치라는 둥, 놀러가다 죽은 것을 가지고 왜 이리 요란을 떠는 것이냐는 둥 비아냥거렸고, 심지어 단식 중인 세월호 유족들 앞에서 치킨을 사들고 와 폭식을 하는 비인간적이고도 엽기적인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KBS 앵커 출신 한 보수인사가 세월호 천막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싶다는 인면수심의 발언을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여전히 ‘그들’은 진실보다는 자신들의 무능과 편집(偏執), 아집과 단견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소아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명백한 사실을 증거로 들이밀어도 모르쇠로만 일관하는 그들에게 인간적인 동정과 연민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연목구어(緣木求魚)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작년 가을부터 시작돼 현재까지 진행 중인 일련의 정치적 격변은 양심적인 국민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정치인들의 힘을 빌린 것이 결코 아니다. 무능한 대통령을 청와대로부터 끌어내 법정에 세운 것은 바로 국민들이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확인한 것은, 진실은 끝끝내 가라앉지 않는 법이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모든 진실은 반드시 ‘부상’한다. 일찍이 김수영이 그의 시 ‘풀’에서도 형상화했듯이 ‘바람’으로 비유된 부당한 외부세력의 억압 앞에서 ‘풀’처럼 약해 보이는 민중은 일시적으로 드러누울 수밖에 없지만 도저한 생명력을 토대로 그 억압(바람)을 이겨내고 최후로 웃는 것은 바로 ‘풀(민중)’인 것이다. 얼마 후 다가올 4·19 역시 잔혹한 경찰의 직격 최루탄을 맞고 숨진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이 도화선이 됐다. 정의롭지 못한 세력들은 진실을 은폐하고 위장하려고 안간힘을 썼겠지만 부상하는 진실의 본래적인 힘을 끝끝내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세월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세월호를 저 깊은 바다 속으로부터 건져 올린 것은 단순히 현대 테크놀로지의 놀랄 만한 힘만이 아니다. 바로 진실의 자기부상 속성과 그(진실의) 힘을 믿는 사람들의 염원이 수천 t의 세월호를 멈춘 시간 속으로부터 인양해 낸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의 인양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본격적인 진실 규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죽음,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은 비극, 한 나라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그 절체절명의 시간을 앞에 두고 천연덕스럽게 머리 손질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하릴없이 가라앉고 있었던 진실을 이제 봄날, 아프게 우리는 다시 하나하나 되짚어 봐야 하는 비장하면서도 곤혹스러운 순간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드러나지 않은 7시간의 진실에서부터 세월호와 관련해 온갖 마타도어를 양산하고 여론을 호도하며 진실을 외면했던 모든 세력들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것만이 억울하게 죽어간 고혼(孤魂)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는 길이고 살아남은 자들의 부끄러움을 사죄하는 길이 될 것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겨울은 봄을 이길 수 없으며 불의는 결코 정의를 이길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겨우내 움츠렸던 나무들이 파랗게 새순을 내미는 청청한 봄날 우리는 다시금 벅찬 감격과 눈물 속에서 확인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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