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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구 청운대학교 대학원장
어느 국가나 성숙한 사회로 이동해 가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음을 인류의 역사는 보여준다. 17세기 이후 유럽의 근대화를 이끌어 온 밑바탕은 개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라는 틀이었다. 이러한 제도들을 유지시키기 위해 그들은 많은 피를 흘려야 했고, 그 속에서 약속 잘 지키기, ‘똘레랑스(관용)’와 같은 덕목들을 발굴해 냈다. 상호간에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아서는 위와 같은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을 터이니 ‘사회계약론(약속 잘 지키기)’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불관용(zero-tolerance)에서 시작된 사회적 비극을 보고 똘레랑스 또는 너그러움의 중요성을 체득했을 것이다.

 유럽사회가 지난 400여 년 동안 겪어 온 근대화를 우리는 해방 후 짧은 시간 동안 압축 성장해 왔다. 경제적 성장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성장과 동반해야 할 정신적 덕목들이 그러하지 못해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그러한 덕목들 중의 하나가 상대방에 대한 배려, ‘똘레랑스’ 즉 너그러움이 아닌가 싶다. 너그러움은 상대가 나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내 입장을 접고 상대방 의견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또는 처지를 이해(understand)해 주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상대방보다 아래에 서 주는 것이다.

 얼마 전 공식적인 식사자리에서 누군가가 상대방에게 태극기파인지 촛불파인지를 물었고, 분위기가 잠시 썰렁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소련이 몰락한 지 오래 됐는데도 우리는 이러한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라는 허접한 이분법적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세계는 이미 좌우의 대립을 끝내고 새로운 세상을 그려보고 있지만, 우리는 남북 대립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인지 그런 편 가르기가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선거철이 되면 이것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구태의연한 정치인이 늘 창궐한다.

 신념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물론 유럽사회에도 만연해 있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 1장에는 가족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가족들이 정치 지도자인 파넬(Parnell)을 두고 양쪽으로 갈라서서 분위기가 험악해져 식사도 하지 못하고 끝나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이것은 가족끼리도 정치적, 종교적 입장에 따라 식사도 함께 하기 어려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신념들은 믿을 바가 되지 못하는 개인의 사적(私的) 입장에 불과할 뿐인데 목숨 걸고 피 튀기는 싸움으로 발전한다. 플라톤은 이런 신념을 세상을 파악하는 가장 아랫단계의 인식(認識)으로 보았다.

 개인들이 충돌하는 사적 신념들에 대해 어디까지가 서로 관용을 베풀어 줘야 하는 것인지 실생활에서는 애매하다.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였을 때는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윤리의 마지노선과 위법 사이를 오가며 너는 틀리고 나는 옳다고 상대방을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특히 이데올로기와 문화의 한 극단에 서서 상대방을 배척하는 사람들을 다문화 시대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신념이 다른 상대편을 보고 삿대질하기 일쑤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상대편을 파멸시키기 위해 거짓말들을 쉽게 만들어 내고 퍼뜨린다. 지난해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단어 ‘Post-truth(탈-진실)’가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다. ‘fake-news가짜뉴스’도 여기에 해당한다. 사실에 관계없는 말을 해놓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이러한 현상은 너그러움이 부재하는 사회의 증표(證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수감과 함께 우리 사회에 유령처럼 떠돌던 가짜뉴스들도 이제 걷어치우고, 상대방에게 삿대질하던 손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똘레랑스(너그러움)’정신으로 우리사회의 품격을 높였으면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 지도자들의 노겸(勞謙)이 필요할 것이며, 또한 쟈크 테리다가 말하는 상대방에 대한 ‘환대(hospitality)’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일들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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