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구도(鷄鳴狗盜)란 닭의 울음소리를 흉내내고 개처럼 좀도둑질 하는 천한 재주라는 뜻이다. ‘잔재주를 자랑한다’거나 ‘비굴한 꾀로 남을 속이는 천박한 짓’, ‘바른 사람이 배워서는 안될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 등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실제 고사에서는 ‘천한 재주도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중국 전국시대에 탁월한 인물 중 한 명인 제나라의 맹상군은 출신과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위주로 인재를 등용했다. 덕분에 좀도둑 출신과 닭 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마저도 그를 보필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한 번은 맹상군이 강대국인 진나라에 거의 구금되다시피했다. 맹상군은 궁리 끝에 왕의 후궁에게 탈출을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후궁은 조건을 내걸었다. 여우 겨드랑이 털로 만든 옷인 ‘호백구’를 가져오면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곤경에 처한 맹상군의 사정을 알게된 개 도둑 출신인 그의 수하가 ‘전공을 살려’ 호백구를 훔쳐왔다. 호백구를 후궁에게 건네고 겨우 궁궐을 벗어나 국경에 도달한 맹상군 일행은 굳게 닫힌 성문을 보고 또 한번 좌절했다. 이때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수하가 ‘꼬끼오’ 하고 소리를 내자 성안의 모든 닭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닭 울음소리를 듣고 날이 샌 걸로 착각한 문지기가 성문을 여는 바람에 무사히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흔히 신은 공평하다고들 한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은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재물을 가졌으면 학식이나 외모가 뒤처지기 십상이고, 외모가 출중하면 가난하거나 학식이 수준 이하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따라서 계명구도는 적재적소에 인물을 등용해 개개인이 가진 ‘천한 재주’ 마저도 요긴하게 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준다.

 그렇다고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잘 것 없는 재주도 주인을 잘 만나면 계명구도처럼 쓰임을 다하리라는 기대심리로 귀한 재주를 갖추려는 노력마저 게을리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인’ 입장도 매한가지다. 세상에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 힘없는 정의와 정의 없는 힘이라는 극단만 존재하는 게 아닌 바에야 끊임없이 배부른 소크라테스와 힘있는 정의를 찾아 나서야 한다. 용빼는 재주 지닌 이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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