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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모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1950년대 임신부들의 입덧 해소, 불면을 해결하기 위해 독일에서 탈리도마이드를 만들어서 시판하기 시작하고 난 후 유럽에서 많은 기형아가 나타났던 유명한 사건이 있다.

 탈리도마이드는 다른 약품들과 마찬가지로 동물실험을 거치고 임상실험을 거쳐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판명돼 시중에 나오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약이 시중에 나오고 나서 몇 년 사이에 유럽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팔이나 다리가 없는 기형아 출산이 1만 명이 넘어 역학조사를 시행하고 나서 원인이 탈리도마이드라는 것을 밝히고 전 세계에서 판매가 금지됐다.

 임신부에게 나타나는 불면증, 두통, 기침, 입덧 등의 임신 기간 나타나는 증상에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형아를 출산한 산모들의 공통점이 탈리도마이드라는 것을 역학조사 결과로 알게 됐던 것이다.

 유럽에서는 기형아가 많이 나타난 반면 미국에서는 17명밖에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미국에서는 기형아가 적게 나타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이 그 당시 FDA에서 근무하는 프랜시스 켈시라는 공무원이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같은 기능을 하는 FDA에 발령받고 처음 맡은 일이 탈리도마이드를 수입해 판매허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동물실험에서 전혀 아무런 작용이 나타나지 않은 약이 인간에게서 불면을 해결하고 입덧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는지가 이해가 가지 않아 증빙서류 미비로 서류를 더 보완할 것을 요구하고 판매허가를 미룬 것이 미국인들을 안전하게 만든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일을 착실하게 하는 동안 제약회사는 미국에서도 의례적인 심사과정을 거쳐 판매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가 의외의 난관에 부딪쳐 집요하게 승인허가를 요구했던 것 같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밝혀지고 난 후 프랜시스 켈시는 이 사건 덕분에 캐네디 대통령으로부터 상까지 받았다.

 여기까지가 1953년부터 1961년까지의 사건이다. 우리는 그리고 여기는 2017년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에 현재 입사한지 얼마 안 됐지만 프랜시스 켈시와 같은 능력과 판단을 할 수 있는 공무원이나 직원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많은 프랜시스 켈시와 같은 말단 직원 혹은 막 입사한 직원의 판단을 신뢰하는 집단과 실무자를 믿지 않고 권력을 이용한 상급자의 판단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집단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담당자의 판단을 신뢰하고 결과에 따른 징계와 보상이 타당하게 이뤄진다면 누구든지 최선을 다해서 직무에 열중할 것이다. 그러나 상급자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담당자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에서는 담당자들이 일하려고 하는 동력을 잃어버린다.

 위험한 결정은 위에서 함께 책임지는 사회, 실무자의 판단과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문화, 징계와 포상이 명확한 사회가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소신을 관철시킬 수 있는 많은 프랜시스 켈시를 키우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또 안정된 사회에서 서로를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충격이 컸던 사건이어서 어느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많이 인용되는 것 같다.

 보통 약물 부작용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나 그로 인해 강직한 표본이 된 프랜시스 켈시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모쪼록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사례들을 발굴해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는 소신 있는 실무자들에게 긍지와 신뢰를 줄 수 있는 문화와 그들의 소신을 지켜주는 사회로 변화하는 소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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