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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時調人
봄이 익어간다. 청명 한식도 지났으니 텃밭에 뿌린 갖은 채소들이 싹을 틔운다. 저간의 세정은 미사일이다 사드다 하여 번잡한 가운데 나라는 조기 대선일정으로 바쁘다. 노지에 움트는 새싹과 같이 바람직한 지도자가 탄생하기를 고대한다. 4월은 바야흐로 꽃 천지다. 도시 담장의 노란 개나리와 근처 산 언덕의 박홍빛 진달래가 한창이다. 전국 곳곳은 수안보온천 시조문예축전 등 벚꽃축제로 몸살 아닌 몸살을 앓는다. 이 분분한 세월, 본인의 졸작 시조 한 수로 달래본다.

 ―《봄날》―
 오늘 본 / 꽃 세상이 / 꿈인지 생시인지 ∥ 해마다 / 사월이면 / 또 봄인가 하다가도 ∥ 그 잠깐 / 한눈 팔 때에 / 하마 가고 없더라.

만물은 다 제 이름이 있다. 시조의 제 이름은 ‘시조(時調)’다. 본말은 시절가조(時節歌調)다. 그 시대에 지어 부르는 노래, 참 멋진 이름이다. 저 18세기 조선의 가객 이세춘이 그리 불렀다고 전한다. 350여 년이나 됐다. 향가에 기원을 둘 경우 시조가 생겨난 지 1천여 년이니, 학자에 따라서는 그때와 같이 이름이 불렸을 거라는 이도 있다. 그래서 시조의 ‘시’는 ‘시 詩’가 아니고 ‘때 時’를 쓴다. 시조는 늘 그때 그 상황과 함께하는 것이니 오늘날의 시조는 현재에 살아 꿈틀거린다. 시조는 예전에 단가, 신조, 영언, 가곡 등으로도 불렸다. 창(唱)으로 잘 불리던 것이 근대화 과정 속에서 글로써 짓고 이미지로 음미하는 ‘시’로도 정착됐다. 그런데 그 명칭을 시조시, 정형시, 국민시, 시조, 심지어 시 등으로 다르게 쓰고 있다. 또한 시조 작품집을 시집, 시선집, 정형시집으로 쓰는 이도 있다. 시조작가를 아예 시인으로 쓰는 이도 있다. 이것이 요즈음 우리 시조계의 씁쓸한 현실이다. 예술 표현의 다양성의 일면이라 할 수도 있겠다. 시조인으로서의 자존감의 결여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지금은 21세기,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 나라 이 땅에서 왜 우리 겨레의 전통시인 시조를 시조라고 당당히 밝히지 못하는가. 지난 100여 년간 우리 시조는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 1920년대에 들어 일본 유학생 출신을 포함한 엘리트들에 의한 자유시의 거센 물결에 시조는 크게 위축됐고, 구시대의 산물이며 자유시가 대세인 현대사회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을 편 경우도 있었다. 시조의 형태를 극단적으로 헐어 자유시를 닮으려 하는 시조시인들도 많다고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석규 이사장은 말했다. 동감이다. 더구나 초·중·고 교과서에는 8~9편 정도의 시조가 자유시에 섞여 수록돼 있다고 한다. 1960년대에 실렸던 70여 편 시조의 자리는 무엇으로 대체되었는가. 가르치는 교사나 배우는 학생이나 시조인 줄도 모르고 수업을 한다니 과연 바른 교육인가.

 본인은 시조와 자유시를 다 쓰고 있다.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조는 시조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시조는 시가 될 수는 있어도 시가 곧 시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조는 정형시가 될 수 있어도 정형시가 곧 시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에는 자유시도 있고, 정형시에는 율시나 소네트도 있다. 국민시는 일본의 하이쿠처럼 그 나라의 온 국민이 함께 짓는 거라는 일반 명사다.

 차제에 우리 한국 시조계에 뜻 깊은 선언이 있었다. ‘시조 명칭과 형식 통일안’이 그것이다. 2016년 12월 15일 서울에서 한국시조협회가 주최한 행사였다. 물론 그해 11월 17일 국회에서 이종배 국회의원과 공동주최한 공청회(발제와 토론)를 거친 결과였다. 본인이 속한 한국시조문학진흥회 등 6개 시조단체가 참여했다.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못지않은 선언이라는 평도 있다. 그 통일안에서 "이… 명칭을 시조(時調)라 한다"라고 명기했다. 이를 정리해 본다. 오늘날의 시조는 글로 쓰기도 하고 노래로도 부른다. 문학(글)으로는 그 이름을 ‘시조’로 하고, 음악(노래)으로는 그 이름을 ‘시조창’으로 한다. 시조 작가를 ‘시조인’ 또는 ‘시조시인’으로 한다. 시조 작품집은 ‘시조집’으로 한다. 외국어 표기도 이에 맞춰 쓰면 좋겠다. 김춘수 시인은 ‘꽃’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고 했다. 시조도 제 이름을 불러줄 때에 올곧고 떳떳이 서지 않겠나. 까마득한 후대 시조인인 이 몸이 이제 다시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시조야! 시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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