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너의이름은.jpg
인간의 특징을 정의한 용어 중 호모 나랜스(Homo Narrans)와 호모 픽투스(Homo fictus)가 있다. 전자와 후자 모두 ‘이야기하는 인간’이란 뜻으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옛날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렇게 어머니의 어머니로 계속 오르다 보면 우리는 인류의 기원인 ‘이야기하는 인간’과 마주하게 된다.

 이야기의 힘은 무엇일까? 우선 재미있어야 한다. 그것이 충족돼야 오래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재미있는 이야기의 추진력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감에서 온다. 즉, 다가올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재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이야기에 대한 공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 ‘너의 이름은.’은 지난 연말 일본 개봉 후 1천600만이 넘는 기록적인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300만이 넘는 관객이 다녀가며 일본 애니메이션 중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다.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과 공감을 찾을 수 있을까? 작품을 만나 보자.

 10대 여고생에게는 더없이 지루한 시골에 살고 있는 마츠하.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게 소원일 만큼 동네는 조용하고 따분하다. 게다가 가문의 대를 이어 내려오는 풍습마저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 마츠하를 더욱 괴롭힌다. 그녀는 다음 생에 도쿄의 훈남 남학생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홧김에 내뱉을 만큼 현재 생활이 못마땅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츠하는 남학생 다키로 살아가는 꿈을 꾼다. 원하던 대로 도쿄에서 살아가는 그 꿈은, 그저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사실적이다. 그렇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꿈을 몇 번 꾼 이후 마츠하는 자신의 경험이 꿈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다키와 마츠하는 비정기적으로 몸이 뒤바뀌는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며 서로를 알아간다.

 그러다 갑자기 이 현상이 멈춰 버린다. 다키는 시골 여학생과 더 이상 교감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을 때 생생하던 그 모든 기억들이 흐려지듯, 마츠하에 대한 다키의 기억과 흔적이 빠른 속도로 지워져 갔다. 이에 다키는 마츠하를 직접 만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어렵게 찾아간 시골 마을은 3년 전 혜성의 충돌로 사라져 버린 뒤였다. 흐려지는 기억 속에 다키는 자신이 왜 그 폐허에 서 있는지도 모른 채 스스로 되뇐다. 잊고 싶지 않은 사람, 잊으면 안 되는 사람, 너의 이름은?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2016년 신작으로 그는 이미 국내외 많은 팬을 보유한 인기 작가다. 마코토 감독의 강점인 섬세한 연출과 아름다운 영상미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전달하는 이야기의 느낌은 전작들과 차이가 있다. 기존 작품들의 서사가 아름다운 가운데 아련한 슬픔을 머금고 전개됐다면 이 작품은 밝고 명랑하다. 하지만 초반의 경쾌한 분위기는 중반 이후 진지하며 비극적인 정서와 결합해 극적 구조를 강화한다. 이 작품을 통해 세상에 작은 희망과 기대를 심어 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기대가 반영된 만큼 영화는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곳곳에 심어 둔다. 이처럼 필연적이면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는 호모 나랜스인 우리에게 즐거운 일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