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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3 아이덴티티’로 본 해리성 정체감 장애

1, 2, 3, 4… 24…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7년 04월 19일 수요일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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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이진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해리’란 의식, 기억, 정체성, 감정, 지각, 운동 통제 그리고 행동의 정상적 통합의 붕괴 또는 비연속성을 의미합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둘 또는 그 이상의 별개의 성격 상태 또는 빙의 경험을 말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드라마 ‘킬미, 힐미’ 등 여러 작품에서 흥미로운 소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23 아이덴티티(2017)’에서의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스릴을 전하는 영화적 장치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다중 인격의 원인과 그들의 내면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합니다.

# 23개 인격과의 위험한 동거

23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케빈은 24번째로 등장한 인격의 지시로 케이시를 포함한 3명의 소녀를 납치합니다. 영화는 도망가려는 소녀들과 다양한 인격들 사이의 관계와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이 영화는 1977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24개의 인격을 갖고 살인, 성폭행을 일삼은 빌리 밀리건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됐습니다. 빌리 밀리건이 별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전류 검사 등을 통해 신체적 반응이 인격마다 달랐다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로 인해 무죄로 풀려나 지금까지 논란의 선례를 남긴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빌리 밀리건처럼 케빈의 뇌 속에도 수많은 인격이 동거하고 있어 육체는 하나지만 심리적 주인이 여러 명인 셈입니다. 그 인격들 사이에서 서로 힘의 견제가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결국 24번째로 등장한 폭력적인 성향의 ‘비스트’라는 인격으로 인해 세 소녀의 목숨은 위태로운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스릴러 장르인 이 영화가 남기는 메시지는 어쩐지 공포스럽지만은 않습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는다는 것은 인격들에 스스로 매몰되고 지배당하는 일입니다. 그의 범죄가 합리화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그가 겪은 최초의 상처에 대해 적어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고통과 결핍이 만드는 또 다른 인격과 자아는 피해자의 생존 전략이자 세상을 향한 방어의 무기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 해리성 정체감 장애의 원인과 치료법

해리 장애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 해리성 둔주가 동반되거나 동반되지 않는 해리성 기억상실, 이인성·비현실감 장애로 나뉩니다. 먼저 해리성 기억상실은 자전적 정보를 회상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경우를 일컬으며, 해리성 둔주가 동반되거나 동반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리성 둔주는 정체성 또는 다른 중요한 자전적 정보에 대한 기억상실과 연관돼 있고 외관상으로는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하거나 방랑을 하는 경우입니다. 이인성·비현실감 장애는 이인증(개인의 마음, 자기 또는 신체로부터 분리되는 경험) 또는 비현실감(자신의 주변 환경과 분리되는 경험)이 지속되거나 반복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흔히 다중 인격 장애라고 불리는 정신질환입니다. 한 사람이 둘 또는 그 이상의 구별되는 정체성이나 인격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환자는 각 인격의 성격에서 경험한 것을 기억할 수 없기도 하지만 각 인격이 서로의 존재를 알고 견제하는 특징을 보이기도 합니다. 서로 갈등을 빚기도 하고 활동을 방해하기도 하는데, 인격 간의 갈등 관계를 해소하는 것이 질환 치료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대인관계에서 경험하는 신체적·성적인 학대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 외에 아동기의 내과적·외과적 시술, 전쟁, 아동기 성매매 그리고 테러리즘을 포함하는 다른 형태의 외상적 경험이 보고되기도 합니다. 학대나 외상으로부터 받은 충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또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피하고자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23 아이덴티티’의 케빈처럼, 실제 주인공인 빌리 밀리건처럼 어린 시절에 경험한 상처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새로운 인격을 불러내는 것이 연관돼 있기도 합니다.

우울장애, 외상 및 스트레스 관련 장애, 성격장애, 전환장애, 신체증상장애, 섭식장애, 강박장애, 수면장애 등 다른 정신과적인 문제와 공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뇌손상에 의한 외상 후 기억상실, 신경인지장애, 발작장애, 긴장성 혼미와도 구분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정신치료를 통해 다양한 인격들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균형을 파악하고 힘의 평형을 갖게 하는 방식의 치료가 진행됩니다. 정신치료적 접근과 함께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의 약물 보조 요법이 병행됩니다.

정신치료는 다른 치료와 달리 상당히 많은 시간과 비용을 요구합니다. 각 성장 과정과 사회에서 억압받는 아이들, 더 나아가 상처받는 사람들을 보듬어 줄 기회를 점차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의 예방은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도움말=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이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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