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삐딱한 성격 탓에 평소 남들이 그렇게 알고 있거나 믿고 있는 속담, 격언, 사자성어 등등의 의미에 대해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품어왔던 기자로서는 더더욱 그랬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는 속담은 독재자의 지배논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반박했다가 선친께 꾸지람을 들은 적도 있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을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해진다’고 해석했다가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했다. ‘조삼모사’와 ‘조사모삼’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대들었다가 수업시간 내내 교실 뒤쪽에서 두 팔을 들고 있기도 했다.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한 놈 중에 ‘수신’(修身)은 몰라도 ‘제가’(齊家)까지 한 놈 있으면 나와보라며 호기를 부린 적도 있었다.

한데, 어젯밤 TV드라마를 보다가 여주인공의 명대사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고 말았다. SBS 드라마 ‘귓속말’ 여주인공 신영주(이보영 분) 씨의 대사다. "이동준 씨는 두 번 모아서 한 번 좋아하고, 세 번 모아서 한 번 슬퍼하고 살았나? 희한하게 살았네. 난 일희일비할게요."

옳거니! 비로 이거다. 기자는 왜 지금껏 일희일비(一喜一悲)는 해서는 안되는 금기로만 알고 있었을까. 귀에 인이 박히도록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살면서 부지불식간에 기자도 세뇌됐던 모양이다.

상황에 따라 좋아했다 슬퍼했다를 반복하는 게 뭐가 그리 잘못됐단 말인가. 순간순간 닥쳐오는 상황에 따라 감정이 춤을 춘다 한들 그게 어디 억눌러야 할 죄악이라도 된단 말인가. 인간지사 새옹지마라고 길흉화복이 번갈아 일어나니 널뛰기하듯 감정변화를 일으키는 건 경계하라는 의미인지는 알겠으나 그렇다고 일희일비를 터부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슬픈 일이 닥칠까 우려해 기쁠 때 기쁨을 감추는 것, 기쁜 일이 생길까 기대해 슬플 때 슬픔을 누르는 것만이 절대선은 아닐 게다. 솔잎을 먹든, 난자완스를 먹든 송충이가 선택할 문제다. 사실을 진실인 양 호도해선 안 된다. 어차피 드라마 ‘귓속말’ 얘길 꺼냈으니 이동준(이상윤 분) 씨 대사로 마무리하자. "나도 오늘부터 일희일비하면서 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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