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는 기부가 사회적 복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기부금 비중이 국내 총생산액의 0.8% 수준으로 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된 지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민간 차원의 다양한 기부 욕구를 세제상으로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그 중 하나에 해당된다. 특히 공익재단이 특정기업의 주식을 5% 넘게 기부받을 경우 그 초과분에 대해선 최고 50%까지 증여세를 물리는 과세조항이 선의의 기부자를 포기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흉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관행에 변화가 있었다. 지난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수원세무서에서 거액의 주식을 기부한 황필상씨에게 부과한 증여세 조치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2003년 황 씨는 자신이 보유한 회사 주식 90%와 현금 일부를 장학재단에 기부한 바 있는데, 2008년 수원세무서가 세무조사 후 "주식 기부가 현행법상 무상증여에 해당한다"며 재단에 140여억 원(가산세 포함)의 증여세를 부과했다. 이에 불복한 재단이 8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선의의 기부행위에 대한 세금폭탄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대법원으로부터 받아낸 것이다.

 이번 재판이 시사하는 바는 자못 크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공익재단을 통한 기업의 편법지배를 제한한다’는 명분이 자칫 국가의 복지기반을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법적 악용 문제는 ‘기업에 대한 재단의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재단의 설립·운영에 출연자가 관여하지 않도록 조치’만 취해도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까지 안 담글 순 없지 않나. 이렇듯 선의로 포장된 악법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은행에 대한 산업자본 의결권 지분을 4%로 제한하는 은산법도 대표적인 예다. "은행이 재벌의 금고가 돼선 안 된다"는 명분 때문에 혁신과 발전의 기회가 꽉 막혀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여신한도 규제’만으로도 충분히 풀 수 있는 사안이다. 게다가 첨단기술로 무장한 산업자본이 진입하면 경쟁적 환경 활성화로 기존 은행의 잠재력까지 끌어올리는 ‘메기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법을 규제 논리로 접근하기보다는 바람직한 사회를 향하는 나침반이 되도록 재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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