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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
"우리에겐 헌법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습니다." 미국의 닐 고서치(Neil Gorsuch) 연방대법관이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열린 의회 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간단명료한 그의 답변은 법의 존중, 법치(法治)였다. 이어 고서치는 지난 10일 취임사를 통해 "이 위대한 나라의 헌법과 법률의 충실한 종복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설파, 장황설 없이 오로지 ‘법에 의한 지배’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태평양 건너의 나라 소식을 비록 보도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이지만 타국의 한 법관의 이 한마디에서 가히 미국의 ‘법의 정신’을 보는 듯하다.

 내일 25일은 ‘법의 날’이다. 우리는 으레 그래 왔듯이 또다시 전국의 각 법조 기관 수장들은 기념사를 통해 법의 이념과 목적을 운운하며 시민들의 준법정신을 강조할 것이다. 그렇다. 민주시민이라면 마땅히 법을 지켜야 한다. 문제는 지도층 인사들의 불법 행위가 법을 지키는 다수의 시민들을 허탈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는 법률가를 치욕적인 언사로 풍자하여 일컫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까. ‘법꾸라지’가 그것이다. 그야말로 법조인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촌철살인(寸鐵殺人)한마디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닐 수 없다.

 전해지는 소식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자행하는 온갖 비리에 부정부패뿐이다. 불법을 저지르기를 여반장으로 하는 고위층 인사들이다. 더욱 우리를 허탈하게 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 준법에 솔선수범해야 할 법조인들이 오히려 법을 지키는 데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 도처에 ‘법불가어존(法不可於尊 ; 법은 존귀한 사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의 지체 높으 신 분들이 그토록 많은가. 3일 전에는 또 한 광역단체의 교육감이 수뢰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단 하루도 범털(사회지도층 인사들을 일컫는 교도소 속어)들의 국립호텔(교도소) 입실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다. 이 같은 일련의 뉴스들 또한 우리를 씁쓸하게 하고 있다.

 요즘은 제 19대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어 각 후보들 간 공격과 방어가 치열하다. 서로 상대를 헐뜯는 과정에서 네거티브는 도를 넘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 같은 치열한 공방 과정에서 후보들의 의심되는 과거 비리혐의들이 상당수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결코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다. 사안들이 너무 중하다. 명명백백 진실이 밝혀져야 하겠다.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영장 심사도 법과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수사기관은 청구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라도 하면 마치 수사에서 개가를 올린 것처럼 쾌재를 부르곤 한다. 유무죄 여부는 차후 문제인 듯하다. 재판부 또한 최근 일련의 폭주하는 국정농단 관련자 영장신청에 대한 발부 여부를 놓고, 법과 원칙보다는 국민감정에 좌우돼 결정하는 사례는 없었는지 되돌아 볼 필요도 있다.

 구속이 곧 유죄는 아니다. 유무죄의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진다. 현행 우리 형사소송법은 제198조에서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구속은 도주 또는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법관이 판단할 때 예외적으로 발부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과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는 사회인가? 우리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 세 기관을 법조삼륜(法曹三輪)이라 칭한다. 진실공방을 거쳐 올바른 판단으로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노력하는 기관이라는 의미다. 결코 비리삼륜(非理三輪)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법의 지배가 이루어지는 사회만이 법치주의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서민의 한이 담겨있는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라든가,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가 기준이 되어 재판이 이루어지는 사회라면 결코 사법정의가 이루어지는 국가라 할 수는 없다. 한비자(韓非子)의 말대로 죄과가 있으면 큰 벼슬아치라도 형벌을 피할 수 없는(刑過不避大臣) 사회가 되어야 진정한 법치 국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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