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별한 아내에게 바치는 선물로 두번째 수필집 ‘파일을 열며’ 낸 서부길 작가.
▲ 사별한 아내에게 바치는 선물로 두번째 수필집 ‘파일을 열며’ 를 펴낸 서부길 작가.
"나의 호(號) 송정(松鄭)에는 나만의 비밀이 있다. 먼저 세상을 뜬 아내 이름의 끝 자를 떼고 거꾸로 읽은 것이다. 30여 년간 동고동락한 처를 조금이라도 잊지 않으려는 궁리 끝에 채택했을 뿐. 고맙고 고마운 존재, 하늘나라에 있을 아내에게 이제 선물을 (또)할 차례다."

10년 만에 두 번째 수필집 「파일을 열며」를 최근 펴낸 서부길(68)작가가 ‘선물’에 실은 글 중 일부이다.

서 작가는 암투병하다 숨진 아내가 작품집 발간을 당부한 생전의 유언에 따라 첫 수필집 「바다, 그 영원한 꿈(2007)」을 내고 올해 두 번째 선물을 바쳤다.

"거자일소(去者日疎)라고, 죽은 사람에 대한 생각은 날이 갈수록 잊혀져 간다는 속담도 있지만 항상 나와 자식을 우선하고, 곁에서 예술혼을 지켜주고 성원해 준 아내의 내조를 잊지 않고 있어요."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선물’ 말고도 책 제목과 같은 ‘파일을 열며’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아내가 정리해 왔던 파일을 어느 날 찾고 감회 속에서 쓴 글이에요. 두툼한 파일에는 단 한 장뿐인 아내의 육필 편지와 함께 가족 삶의 족적인 출생증, 생활통지표, 카드나 편지 등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어요."

50여 편에 달하는 작품이 실려 있는 서 작가의 제2수필집 「파일을 열며」에는 아내에게 못 다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바다와 갯벌에서 영감을 얻은 글이 가득하다.

"인천에서 태어나 고향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데다 인천시 수산과장을 마지막으로 퇴직해 바다, 갯벌과 관련된 작품들이 많아요. 바다에 대한 많은 경험과 지식들이 모두 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는 셈이죠."

그의 대표작 ‘순정이’가 여자 이름이 아닌 ‘밴댕이’란 고기를 뜻하는 인천 지방의 방언인 것처럼 지역을 알지 못하면 쓸 수 없는 글이 여럿 있다.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인천 바다의 풍경들을 소개한 이번 수필집에는 그의 애향심과 함께 인생의 깨달음이 묻어나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제 고희를 바라보는 서 작가는 문단 후배들에게 이런 말도 남겼다. 책 245쪽 ‘내가 걷는 문학의 길’에 실린 내용과 겹친다.

"문인의 길이란 첫째가 등단이요, 둘째가 저서 출간, 셋째가 문학상 수상이라는 말을 수필계의 거두에게서 들은 적이 있어요. 글이란 술술 써지는 게 아니라 각고의 고통으로 쓰고 고치며 퇴고를 거듭할 때 비로소 찬란한 빛을 발하는 법이죠. 끊임없는 성찰과 변함없는 글쓰기는 문인들의 기본 자세 아닐까요? 인생의 뒤안길에서도 웅숭깊은 한 편의 수작을 쓰고 싶은 작가로서의 욕심은 똑같죠."

김경일 기자 ki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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