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시리아 알레포,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내전의 한복판에서 발생한 자폭테러. 폭발의 충격으로 잠시 의식을 잃은 한 사진기자가 정신을 차렸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한 아이. 그는 그 아이를 향해 달려갔지만, 이미 숨져 있었다. 곧장 다른 아이를 향해 달려갔다. 다행히 미약하나마 숨을 쉬고 있었다. 아이를 안고 앰뷸런스를 행해 뛰었다. 아이는 그의 팔을 꼭 잡고 있었다. 다시 현장으로 달려온 그는 곧바로 쓰러져 있는 다른 아이에게 달려갔다. 아이는 숨을 쉬지 않았다. 감정이 북받쳐 오른 그는 아이 옆에서 무릎을 꿇고 목 놓아 울었다. 이날 테러로 어린이 68명을 포함해 126명이 숨졌다. 아이를 안고 뛰던 그의 한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취재보다 인명을 먼저 살핀 그의 행동은 전 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1994년 한 사진작가가 퓰리처상을 받았다. 사진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다. 그가 한 해 전 내전이 한창이던 아프리카 수단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이 그에게 이러한 명예를 안겼다. 사진 제목은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 이다. 죽은 동물의 사체를 주로 먹고 사는 새 콘도르가 땅바닥 위로 내려와 서 있었고, 그 앞에는 굶주려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머리를 스스로 들 힘조차 없었는지 땅에 머리를 대고 한 아이가 쭈그려 앉아 있다. 흡사 콘도르가 어린 소녀가 죽기를 기다리는 듯한 장면이다.

작가는 본능적으로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고,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 사진은 참혹한 내전의 참상을 고발하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작가는 굶어 죽어가는 아이를 왜 지켜보기만 했냐는 비난을 받게 됐고, 결국 자신에게 최고의 명예를 안겨 준 한 장의 사진은 그를 비극적 죽음으로 몰고 갔다.

딜레마다.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이상 이 딜레마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 근거한 보편적 양심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언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된 사명이 앞선 직업적 양심을 지킬 것인지, 만약 당신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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