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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석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2016년 10월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외교 실상과 한반도문제 해결 노력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는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한국의 입장을 정하는 유관기관 회의에서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현 더불어민주당 19대 대통령 후보)이 북한의 의견을 확인해 보도록 결론을 내렸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로 말미암아 저자인 송 전 장관과 문 후보(측) 사이에 내용의 진실성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 현재에 이르게 됐다.

논쟁의 핵심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북한에 문의한 시점이 표결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결정하기 이전인가 아니면 결정한 이후였는가?

문의의 성격이 북한의 의견을 물어본 것인가 아니면 한국의 입장을 통보한 것인가? 그리고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한국이 취하려는 입장을 북한에게 물어본다’는 것이 과연 적절치 못한 일이었던가 아니면 불가피한 일이었던가?

문의의 시점에 대해 보면, 「빙하는 움직인다」에 의하면 송 전장관은 대통령이 11월 20일 최종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고 문의는 한국 입장을 최종 결정하기 이전이라고 밝히고 있고, 문 후보 측은 반박을 통해 결정은 이미 10월 16일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문의 시점은 결정 이후라 주장한다. 이 문제는 11월 16일 회의에서 주재자인 노무현 대통령이 명시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퇴장해, 한국 입장 결정 ‘시점’에 대한 양측의 주장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문의의 성격에 대해 보면, 송 전 장관은 최종 결정이 20일 이뤄진 것이라고 보므로 그 성격을 북한인권결의안 처리에 대한 ‘북한 의견의 문의’로 보고 있다. 문 후보 측의 응수는 몇 차례 바뀌었는데 결정한 것을 통보해 북한의 반응을 탐색하려 한 문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회고록의 기록과 논박 과정에 알려진 내용을 보면 문 후보 측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 명확한 근거를 보충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빙하는 움직인다」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이렇게 물어까지 봤으니 그냥 기권으로 갑시다. 묻지는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 내용을 제대로 읽자면 묻는 것은 통보가 아닌 문의였기 때문이다.

둘째, 문 후보 측은 ‘기권하겠다는 입장을 북에 통보’했다고 주장하나, 그 통보에 대해 북한이 보냈다는 메시지는 ‘남측이…(북한)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북남간 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2017년 4월 22일자 주요 신문 보도)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이미 이루어진 결정이란 기권과 반대인 찬성의 경우에 반대하는 답변이기 때문이다.

문의란 행위의 적절성 문제를 보기로 한다. 기권으로 이미 결정을 내렸으면서 북한의 의견을 알아보려한 것은 물어볼 필요가 없는 것을 묻는 것이고, 우리와 이해관계가 상치되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데 북한의 의견을 물으려 한 것은 물어서는 안 될 것을 묻는 지혜롭지 못한 일이란 견해도 일면 타당성이 있다. 그런 견해와는 반대로, 반대론을 고수하는 주무 장관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남북관계의 유지를 위해서 확인이 불가불 필요했다는 주장도 일면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이 논쟁점이 앞의 두 가지 논쟁점과 달리 기록물로 확인해서 판정할 수 있는 쟁점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번 논쟁은 그 자체로는 당사자 사이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실성’ 논쟁일 수 있었고, 그 결과는 회고록만큼이나 공직을 수행하는 모든 이에게 타산지석의 좋은 교훈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사자가 된 한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됨으로써, 저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논쟁점은 19대 대선정국에서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끄는 이슈가 됐다. 이제 이 이슈에 대한 판정은 훗날 역사가 판정할 국민의 몫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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