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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아주 못생긴 어느 청년이 매일 오후 7시만 되면 집 앞 버스정류장에 나가서 버스에서 내리는 어느 여성을 훔쳐보곤 했습니다. 그 여성에게 말 한번 건네지 못했지만 마음속에는 늘 그 여인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 여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어느 날은 그녀를 우연히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의 작은 점들과 까만 눈썹, 그리고 예리한 콧날이 왠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도 그녀를 볼 때마다 설렜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어김없이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 뒤에서 따라갈 때 처음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는데, 그녀의 엉덩이가 너무 빈약한 것을 보고는 그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늘 "여자는 엉덩이가 커야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단다"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청년은 그녀를 봐도 이전처럼 설레거나 마음이 요동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마음속에서 지워버렸습니다.

 그 여성은 어땠을까요? 그녀도 매일 같이 정류장에 나온 그 청년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추남이라 별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을 매일 기다리는 그에게 점점 관심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저렇게 오래도록 나를 흠모하는 사람이라면 내 인생을 맡길 만할 거야. 내일은 그에게 차라도 한잔 하자고 말해야겠다."

 다음 날,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그러나 어제까지만 해도 정류장에 서 있던 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포도 신드롬’이란 말이 있습니다. 배고픈 여우가 포도를 따먹고 싶지만, 너무 높이 매달려 있어 도저히 딸 수가 없자, ‘저 포도는 무척 실거야’라며 돌아선 이야기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얼굴에 점이 몇 개 있고 콧날이 날카롭다고, 또 엉덩이가 크지 않다는 것 때문에 자기 짝이 될 수 없다고 결정한 것 역시 신포도 신드롬처럼 자기합리화가 아니었을까요? 하루만 더 기다렸다면, 그 여인과 귀한 벗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아마 실패의 많은 경우는 실제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공 직전에서 ‘이 길이 잘못된 길이었나 보다’라고 판단하고 포기한 것이 아닐까요?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다림이나 견뎌냄이라는 미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급한 마음으로는 현명한 결정을 하기가 참 어렵기 때문입니다.

 꿀 한 숟가락을 얻기 위해 꿀벌은 무려 4천200번이나 꽃을 찾아 다닌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만찬’도 8년 동안 2천 번이나 스케치한 결과라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작곡가 하이든은 800여 개의 작곡을 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천지창조’라는 곡은 그의 나이 66세가 되어서야 작곡했다고 합니다. 바로 800여 편의 노래를 만든 기나긴 기다림 끝에 비로소 탄생했다고 합니다.

 어느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진주를 빠뜨렸다고 합니다. 그가 육지에 닿자마자 바가지로 바닷물을 떠서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사흘 동안이나 쉬지 않고 물을 퍼내니까 물속에서 거북이가 나와서 "왜 물을 퍼내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진주를 찾기 위해 바닷물을 모두 퍼내고 있는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언제까지 퍼낼 것이냐는 거북이의 질문에 그는 진주를 찾을 때까지 퍼내겠다고 답하니까, 거북이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진주를 찾아주었다는 재밌는 얘기도 있습니다.

 무모할 정도로 외길을 걸어가는 사람, 어려움에 처했지만 그 어려움을 온몸으로 견디며 묵묵히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 결국 성공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공할 때까지의 기나긴 과정에서 보낸 기다림과 견뎌냄이 곧 행복이었다는 것을 성공한 다음에 깨달을 겁니다. 그러니 ‘한 번만 더!’라는 태도가 결국 행복의 열쇠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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