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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익 한국학술연구원 부원장
최근 한국 헌정사상 초유의 혼란 상태를 거쳐 역동적인 또 다른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작년 말 일명 최순실 게이트 직후 2016년 12월 9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 소추 의결, 국무총리의 권한대행 체제, 2017월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이라는 파란만장한 정치적·사법적 과정이 숨 가쁘게 지나갔다. 대다수 국민들은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상황과 국민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념·지역·세대 간 대립과 갈등을 보면서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아노미(Anomie) 현상에 한동안 시달려야 했음은 물론이다.

 오죽했으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이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풍자가 이웃나라 중국에서 회자되었겠는가? 1948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망명을 비롯해 피살, 투옥, 자살, 탄핵으로 점철되어온 대다수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한 종말을 빗대서 하는 말이리라. 이와 같이 리스크(risk)가 큰 직책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용(龍)으로의 승천을 위해 부단한 도전을 하고 있다. 수도권의 광역단체장들 역시 거의 예외 없이 대권의 꿈을 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1995년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민선으로 선출된 조순, 고건, 이명박, 박원순 중 이명박 전임시장이 유일하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인구 및 경제력이 가장 큰 경기도의 경우 이인제, 손학규, 김문수, 남경필 등이 연이어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모두 당내 경선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인천시의 경우 안상수 전 시장이 유일하게 두 번 도전했으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수도권의 비중과 중요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실상 수도권은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함에도 2015년 기준으로 인구의 49.%, 2014년 기준 전국 지역내총생산(GRDP)의 48.8%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핵심 중추지역이라 하겠다. 또한 20대 국회 지역구 국회의원 의석 253석 가운데 수도권 3개 시·도에 48.2% 이르는 122석이 몰려 있을 정도로 정치력이 절대적으로 집중돼 있다. 그에 따라 수도권 지역은 변함없는 국가발전의 동력원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통상적으로 대통령과 수도권 광역단체장과의 역학 관계는 소속 정당 동일 여부 및 대통령과의 친소 관계에 따라 불가피하게 인사상 혜택, 행·재정상 지원, 예산 지원, 지역개발 등 측면에서 다소간의 차이를 보여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와 광역단체장의 임기가 다르고 또한 광역단체장의 임기가 대통령 과도기에 걸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따라 대통령과 광역단체장 간 역학관계에서 유의미하고 정형화된 패턴이나 유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결과는 유권자들 사이에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광역단체장 간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정치적 심리 작용에 기인한다.

 아울러 중앙과 수도권의 공동발전이 곧 국가 및 국민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내일 새로이 선출되는 제19대 대통령은 무엇보다 북핵과 관련해 야기되고 있는 동북아의 급변하는 정세 변화와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과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미·일·중·러 간 논의에서 정작 당사국인 한국이 배제되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을 타개할 수 있는 국제 외교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오랜 동안 남북, 남남 간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병든 한국 사회를 치유하고 통합시킬 수 있는 국가 통합능력의 발휘가 요구된다. 아울러 지난 11년간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경제 운용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앙과 수도권의 상생을 통한 국가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혜안의 제시와 실천이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대통령과 광역단체장 모두 "不謀全局者, 不足謀一域(불모전국자, 부족모일역, 전체 국면을 두루 고려하지 않고 문제를 처리하면 한 지역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라는 중국 청나라 진담연(陣澹然)의 글귀을 깊게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지방 일이든 나라 일이든 국가 간 일이든 숲과 나무를 고루고루 볼 수 있는 균형 잡힌 리더십이 필요하다. 새로운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들과 같은 비극적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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