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라면 나가야지 어쩐답니까. 나라 땅에 얹혀살고 있는 것이 죄죠."

 인천시 동구 송림2동의 한 주택가에서 거주하는 A(62)씨는 ‘재개발’이라는 단어를 듣자 먹먹한 심정부터 드러냈다.

 A씨는 "집 주변 지역이 재개발된다고 하는데 나는 설명회조차 나오라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도 없다"며 "13.2㎡를 제외한 집 터 대부분이 나라 땅이라 그곳에 살고 있는 내가 무슨 염치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시아버님이 피난 내려와 자리잡고 살던 집이지만 나가라고 하면 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딸집에 얹혀살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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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1·2동 재개발구역 일대,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A씨가 살고 있는 49.5㎡ 집터 대부분은 국공유지다. 13.2㎡의 거실 겸 주방, 9.9㎡ 방 1칸, 외부 화장실·창고가 A씨가 홀로 살고 있는 집 구조다. 이전에는 돌아가신 시부모와 남편, 현재 따로 나가 사는 딸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현재 일정한 직업이 없는 A씨는 최근 건강까지 나빠져 집 밖으로 나서는 일도 쉽지 않다.

 그는 "최근에서야 살고 있는 이 집의 대부분이 타인 명의로 돼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일이라도 할 수 있다면 적은 돈으로 월세방이나 구해 나갈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인근에 사는 B(65)씨는 "뉴스테이 재개발 사업이 빨리 이뤄져 낙후된 이 동네를 발전시켜야 한다"면서도 "홀몸노인과 상황이 어려운 주민들에게는 살 집은 제공해야 한다. 사실 이 동네는 홀몸노인과 살림살이가 어려운 주민들이 대부분이라 이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주는 재개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B씨는 송림2동 주변에서 식당을 하며 35년 넘게 살아왔다고 한다. 그는 "동네가 너무 낙후돼 무너져 가는 건물도 많고 겨울철 불도 많이 나고 있다"며 "지난 겨울에도 누전으로 불이 나 옆집에 자고 있던 홀몸노인이 숨지는 일도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B씨는 이어 "아들이 어렸을 때 이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놀림받아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며 "지금 살고 있는 허름한 집을 아파트로 바꿔 준다면 아직 집을 마련하지 못한 아들에게 줄 것이다"라고 말한 뒤 발길을 돌렸다.

# 정태철 재개발사업 조합장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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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라 불리는 송림1·2동 구역의 낙인에서 벗어나는 뉴스테이 사업은 꼭 필요합니다."

 10여 년이 넘도록 인천시 동구 송림1·2동 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에 앞장서 온 정태철(74)조합장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정 조합장은 "며칠 전(4월 30일) 뉴스테이 재개발 사업 시공자가 정기총회를 통해 최종 선정됐다"며 "드디어 우리 주민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라고 흥분된 말투로 말했다.

 그는 "2010년 10월 풍림·진흥기업이 컨소시엄으로 송림1·2동 구역을 재개발하려 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이유로 사업이 수포로 돌아갔다"며 "당시 80% 이상 재개발을 원했던 이곳 주민들과 함께 고배를 마셔야 했다"고 말했다.

 실제 2010년 10월 풍림산업·진흥기업 컨소시엄은 동구 송림동 160번지(송림1·2동 구역) 일대에 아파트 2천351가구(임대 400가구 포함)를 짓는 시공사(공사금액 4천18억 원)로 선정됐다. 하지만 시공업체 중 한 기업이 법정관리 등의 문제로 사업이 중단됐다.

 그는 1차 재개발 사업 중단 이후 뉴스테이 사업으로 선정되기 전인 최근 4년 동안 자비로 조합사무실 운영비 등을 충당해 왔다고 한다. 1천288명의 송림1·2동 구역 조합원들의 숙원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버텨 왔다고 말했다.

 정 조합장은 "이제는 뉴스테이 연계형 정비사업만이 낙후된 이 구역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됐다"며 "다음 단계인 사업시행 인가를 받기 위해 더욱 힘차게 추진해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송림1·2동 구역에 사는 주민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낙후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고, 이런 부분 등이 재개발 사업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 조합장은 "이곳 주변의 집은 공인중개업소에 내놓아도 팔리기는커녕 셋방 구경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다"며 "대부분의 집들이 30∼40년 이상 돼 매년 냉난방기와 내·외벽 등을 유지·보수하는 비용은 통과의례가 된 지 오래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낮은 면적의 토지소유자, 저소득층, 국공유지 거주자 등 일부 주민들은 보상 문제에 애로사항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며 "하지만 조합은 최대한의 보상 등 협의를 통해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박경섭 비대위원장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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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뉴스테이 사업, 합당한 대책을 마련하기 전까지 막아설 것이다."

 인천시 동구 송림1·2동 구역 비상대책위원장 박경섭(72)씨는 울분을 토하며 이같이 말했다.

 평생을 이 지역에서 살아온 박 씨는 ‘뉴스테이 사업’ 반대를 외치며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이끌어 오고 있다. 박 씨는 최근 운영비 등 경제적 부담으로 비대위 사무실도 문을 닫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뉴스테이 재개발 사업 반대에 앞장서고 있다. 누구보다 이 지역의 속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주민의 입장에서 최적화된 재개발을 하자는 이유에서다.

 그는 "이곳(송림1·2동)은 사실상 빈민가다. 대부분이 자식들 다 키워 내보낸 홀몸노인이고 소년소녀가정, 장애인 등이 많기 때문이다"라며 "이들의 형편도 고려하지 않고 새 아파트 지어 줄 테니 입주해 살라고 하는 것은 그냥 길거리로 쫓아내겠다는 말과 같다"고 말했다.

 박 씨는 "동구 송림동을 포함한 중·동구 원도심 지역은 인천의 경제를 위해 희생한 곳이다. 그 역사와 함께 개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조건 낙후됐다고 부수고 건물을 올리는 것만이 재개발은 아니다"라며 "그 지역의 역사와 주민들의 환경을 잇고 개발해 재생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재개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이곳 주민들 대부분이 빈민층으로 피난을 내려와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이 많고, 그 주민들이 살던 집터는 나라 땅이라 보상도 받지 못하고 내쫓길 판"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인천시나 동구는 이들을 위한 마땅한 대책도 내놓지 않고 오히려 뉴스테이 사업을 부추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이번 뉴스테이 사업이 개발업자와 건설사 등의 배를 불리는 사업이지 진정으로 주민을 위한 사업은 아니라는 입장을 전했다. 여기에 시와 지자체 등도 이들 개발업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주민들의 등골을 빼낸다는 주장을 했다.

 그는 "시·지자체는 재개발 사업 등을 통해 기반시설 등을 기부채납받고 있다"며 "공사와 건립 비용은 다 주민들이 갚아야 하는 이자값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불안한 뉴스테이 사업은 기존에 중단된 재개발 사업 시공사 등을 보존시켜 배 불리는 꼴이다"라고 덧붙였다.

 박 씨는 송림1·2동 구역의 재개발 사업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주민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과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훈 기자 hun@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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