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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실 대한결핵협회인천지부장
이제까지 살면서 힘들기는 했지만 이루고자 했던 것을 이루었을 때 스스로 자신에 대한 만족도 있었다. 고교 입학 당시,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는 속히 직장을 잡을 수 있는 학교가 어느 학교인가가 중요했다. 월급보다는 그저 살만큼 주어진다면 아마 진학도 포기할지도 몰랐다. 인문계니 실업계니 하는 진학에 대한 개념도 없었으나 당시 인천중 3학년 시절, 이용완 담임 선생님께서 ‘그래도 제대로 학교는 나와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데…’ 라고 하시면서 ‘어려운 학생을 도와줄 수 있도록 한번 어머니하고 상의해 봐라’하셨다.

 물론 어머니는 생업에 매달리느라 진학에 대한 의사 표현은 없으셨으나 그동안 주위 분들에게 아들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와 함께 공부깨나 한다는 동네 형들의 부모들 이야기를 들으시고 "힘들지만 한번 대학도 갈 수 있다면 하고…"는 말끝을 흐리셨다. 지금처럼 전문 진학 상담기관이나 사교육기관이 없었던 당시에 중요한 진학 상담은 동네 형들이나 어머니들의 이런 저런 아들 자랑 겸 아들을 키우면서 귀동냥으로 들은 경험이 전부로, 어느 집 아들이 어떻게 커서 무엇이 되었다는 극히 상식적이지만 어머니가 받아들이는 생각의 깊이는 달랐다. 아침부터 늦게까지 시장에서 장사를 마치시고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도 아들이 공부를 마칠 때까지 잠자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대문 밖에서 트랜지스터 라디오 방송을 들으시며 시간을 보내셨다.

 당시 대학 가는 것보다 어머니의 기대와 홀로 두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의 힘든 생활을 보면 공부하는 모습이라도 보여드려야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 같았다. 물론 여름엔 염전 저수지가 있던 송림동 근처 개 건너 가기전 갯고랑이든지 주안 염전 부근 저수지에서 시원하게 수영하거나 겨울엔 지금 송림로터리 부근 현대극장 근처 논바닥에서 썰매 타기 등을 하면서 동네 친구와 놀기도 했다. 눈이 많이 오면 홍예문에서부터 화평동 수문통까지 신나게 스키 타듯 대나무 스키도 즐겼다. 당시 시국이 안정이 되지 않아 늘 걱정하며 ‘물가에 가지 마라’ ‘멀리 가지 말라’고 하시고, 해마다 음력 정월이면 동네 할아버지가 풀어주던 토정비결에 따라 ‘금년에는 무엇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집에서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시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하고 행복하신 것 같았다. 당시에 많은 학생이 보던 학생 잡지인 ‘학원’을 곁다리로 친구 옆에서 보면서 나중에 다시 빌려보거나, 학교 도서관에서 보는 재미도 여간 좋지 않았다. 일가 친척이나 형이 없기에 늘 형이 있는 친구가 부러웠으며, 가끔 시골에 친척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도 해 보았다. 사람은 놀 때가 행복하다. 하지만 행복하게 놀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에 자연히 빌려온 책을 보는 것까지 어머니는 공부하는 것으로 여기시고 만족해 하셨다.

 모든 동물은 놀 때가 행복하다. 잘 놀려면, 제대로 재미있게 놀려면, 놀 때만큼은 나를 잊어버리고 놀아야 한다. 놀 때는 나 자신이 극복대상이고, 내가 나의 경쟁 대상이 될 때는 행복하지 않다. 왜냐 하면 놀면서도 나를 의식하면 힘들어지고 싫증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이와 공부하는 것은 다른 것 같다. 공부하는 것은 나 자신이 자신을 이기기 위해 자신을 경쟁 상대로 하고 있다.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꿈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나와 경쟁하고 지금도 열심히 산다. 더욱이 치열하게 살아가면 살수록 고달프게 느낄 수 있다. 야구에서 노력만 하면 안타 치고 홈런을 때리지 않는다. 물론 홈런 치고 팀이 승리하면 성공한 게임으로 당시는 행복할 수도 있지만 이루기만 하면 다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노력해 만족하면 행복하고 행복한 사람은 다 성공한 사람이다. 늘 성공한 사람으로 자녀와 제자에게 가르쳐주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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