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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세(均勢)와 자강(自强)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7년 05월 19일 금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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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보이지 않는 합종연횡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복잡 미묘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일순간 우리가 그들과 불편한 관계로 내몰리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진 것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부재가 국내 정치적 불안을 초래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그 본질은 우리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고 외교적 조급함마저 노정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주변국들은 상호 이해가 맞물릴 때마다 언제든 자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설령 그들이 우리 문제를 놓고 막후 담합을 했다 하더라도 도덕적 잣대만을 대기 어려운 실정이다.

인접한 국가들과의 갈등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숙명이다. 우리의 역사 또한 대륙과 해양의 가교역을 맡아야 했기 때문에 이질적 문화의 전래부터 전쟁에 이르기까지 여러 유형의 갈등을 유발시켰지만 그래도 상호 공존이라는 큰 틀에서 유지돼 왔다. 19세기에 들어 서양의 제국주의가 동양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중국과 일본을 개항시켰고, 이로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국은 오늘날과 같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구도로 형성됐다. 이들은 오늘날 6자 회담의 주역국들로서, 조선의 개항 이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운명에 깊이 관여하게 됐다.

 1880년 제2차로 일본에 파견된 수신사 예조참의 김홍집은 주일 청국공사 참사관 황준헌(黃遵憲)이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해 제시한 「조선책략」이라는 소책자를 고종에게 전한다. 당시 조선은 대내외적인 위험과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를 모색해야 했다. 인천의 개항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었고, 조선의 외교 및 개화정책과 내치(內治)의 향방에 있어서도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했던 시점이었다.

 조선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이 책자는 강대국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 대외적으로는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과 자체적으로는 자강(自强)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중국의 청나라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현실로 다가서자 일본과 손을 잡고 조선을 이용해 러시아에 대항하고자 했고, 또 속국으로 여기는 조선에 미국과 일본 등을 끌어들이면 미국, 일본 등이 중국 편에 가담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조선의 수신사는 당시 청국이 왜 이런 문건을 조선에 제시했는지에 의심해 보지 않았고, 조선 정부의 주요 대신들은 이 내용을 수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유럽 중심의 국제질서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전환기에 나타났던 책략의 모습이었다.

주변 열강들 사이에 힘의 균형을 만들고(균세론, 均勢論) 부국강병을 도모하는(자강론, 自强論) 전략은 필사(筆寫)되어 전국으로 유포되었지만, 개화와 척사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보수 유생들을 중심으로 거국적인 위정척사운동이 일어났다. 강원도 유생 홍재학은 군주의 존엄을 훼손한 죄로 참형되었고 급기야 전국의 척화비 철거명령이 내리게 됐다. 이러한 곡절을 치른 후 정부는 개방정책의 추진 및 서구문물을 수용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개화와 자강 정책의 실패로 인해 1880년대에 모색되어졌던 생존전략은 결국 일본 제국주의의 틀 속으로 함몰되고 말았다.

 130여 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지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국제질서가 새롭게 재편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만의 독자적인 외교 전략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겠지만, 어쩌면 중국이 제시하게 될 또 다른 ‘조선책략’을 선택하게 될지도 모르는 형국이다. 세계무대에서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주변의 초강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공존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세상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고 시류는 민감하다. 어떤 책략으로 이 난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강호제현들의 중지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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