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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웅 변호사
미국의 상원의원이었던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는 1950년도에 미국에서 활동하는 공산당원 297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해 미국사회는 큰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매카시의 주장을 일부 정치인들이 이용하면서 미국은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싸인다. 수년 뒤 지식인과 기자, 법조인들이 매카시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조목조목 지적할 때까지 미국에서 수백 명이 수감되고 1만여 명이 직장을 잃었다. 매카시즘은 당시 미국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두려워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던 것을 이용해 정치적 라이벌이나 노동조합 구성원, 비판적 지식인, 문화예술인 등을 무분별하고 근거 없이 비난하도록 선동해 미국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해야 했다. 매카시즘은 20세기 미국에서 재현된 마녀사냥이었다.

 미국에서 매카시즘은 오래전에 사장돼 반성적 평가까지 끝났지만 우리나라판 매카시즘인 ‘색깔론’은 여전히 정치와 사회에서 영향력이 막강하다.

 고영주 방송문화재단 이사장은 지난 18대 대선 직후에 "문재인 후보는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건 시간 문제다"라고 말해 큰 문제가 된 바 있다. 고영주 이사장은 이후에도 같은 취지의 주장을 반복했고, 위 발언으로 제기된 재판에서도 본인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19대 대선에서도 예외 없이 색깔론 논쟁이 반복됐다. 생방송되는 토론에서 "종북 좌파", "강남 좌파" 등의 막말이 오갔고, 10년도 지난 대북인권 결의안 문제나 철지난 주적 논란도 반복됐다. 이번 대선에서 ‘색깔론’을 전면에 내세운 정당이 국정농단의 책임이 있음에도 예상보다 선전해 그 위력을 실감하게 했다.

 공산주의는 이미 1990년대에 거의 소멸해 정치사상적으로 매력을 잃었다. 공산주의가 생명력을 잃으면서 세계적으로 ‘레드 콤플렉스’도 사라졌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아직도 ‘색깔론’이 강성한 것은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존재와 비극적 전쟁의 기억 때문이다. 색깔론은 국민들의 안보 불안과 전쟁의 기억을 이용해 생명력을 이어간다. 안보불안과 전쟁의 기억은 집단적인 트라우마로 작용해 공산주의, 특히 북한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을 방해한다.

 색깔론은 이와 같은 약점을 파고드는데, ‘종북’,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이 있으면 그 주장의 근거를 찾기 이전에 즉자적으로 발생하는 거부 반응을 이용하는 것이다. 색깔론의 비겁함은 국민의 상처를 이용한다는 데 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북한에게 휴전선에서 총을 발포해 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국민들의 안보불안을 증폭시키고 전쟁의 기억에 소금을 뿌려 정치적 이익을 도모했다.

 색깔론의 망령은 군사정권에 반대한 대학생과 기자, 지식인, 예술가, 시민들에 대해서도, 야학하는 학생과 노조활동 하는 노동자에 대해서도, 5·18 희생자에 대해서도 ‘빨갱이’ 낙인을 찍었다. 심지어 보편적인 복지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조차도 좌파 프레임을 반대논리로 이용하기도 한다. 정치적인 반대파를 색깔론으로 낙인 찍어 공격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반복되는 우리나라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색깔론은 다양한 사상과 의견의 생존을 억압하며 정치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우리가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선진정치로 나아가는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프랑스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당선된 것과 같이 세계는 이미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북한이 체제대결을 끝내고 정치와 경제가 북한을 압도한 지가 이미 오래이다. 색깔론은 이런 현실에 발 딛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에 뿌리를 내리고 우리가 가야 하는 앞길을 막고 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구태 정치인들의 색깔론에 이용당해 질척거릴 수는 없다. 이제는 정말 국민들의 손으로 색깔론을 걷어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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