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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양섭 화성시주민자치협의회위원장
지난 주말,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이 느닷없이 바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모처럼 일없는 주말이라 소파에 누워 TV나 보려 했건만 아들의 흔치 않은 청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왜’라는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묻지 않았다. 사춘기 때의 나도 이유없이 낯선 곳으로 떠난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디를 가지… 내가 사는 화성 서쪽은 전부 바다다. 궁평항, 전곡항, 매향리, 백미리, 제부도…

 일단 차에 올랐다. 조수석의 아들은 말 없이 턱을 괴고 차창밖을 바라본다. 20분 정도면 서신면에 들어서니 그때가서 정확한 목적지를 정하기로 한다.

 그러고 보면 화성시 바다는 언제 가도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좋아하던 동네 누나가 타지로 시집을 갔을 때도,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졌을 때도, 첫 회사에서 상사의 심한 말에 충동적으로 퇴사했을 때도….

 난 궁평, 전곡의 바다를 찾았다. 어느 새 궁평항이다. 멈출까 하다 화옹방조제 중간의 쉼터가 생각나 계속 차를 몰았다. 아들 녀석은 여전히 말 없이 차창밖 풍경을 본다.

 쉼터에 도착했다. 원래도 말수가 적은 녀석이지만 오늘 따라 더욱 심하다. 필시 뭔가 있으리라.

 나도 말 없이 아들 옆에 앉아 함께 바다를 바라본다.

 고요하다. 바람소리 사이로 새들이 보인다. 아마 이곳에서 잠시 쉬고 북쪽으로 날아가는 새들이리라.

대부분 천연기념물이고 멸종위기종도 있는 모양이다.

 잘은 모르지만 매향리 갯벌과 화성호에 그들의 먹이가 풍부하고 사방이 조용해 우리나라의 몇 되지 않는 철새들의 기착지란다.

 아들 녀석은 여전히 말이 없다. 바다를 보는 건지, 새를 보는 건지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건지….

 미동도 하지 않는 아들 녀석을 보니 한 가지는 분명했다. 무심 평온한 상태라는 것. 대체 무슨 일일까.

 마침 날이 좋아 저 멀리 농섬이 보인다.

 매향리에 있던 미군 사격연습장이 없어진 후 드디어 ‘이제는 그놈의 비행기 소리 안 들어도 된다’면서 좋아하던 매향리 친구가 생각난다.

 참 오래도 참고 오래도 싸웠다고 했다. 젊은 시절, 먹고 살기 바빠 함께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 그 친구만 만나면 내가 술을 사곤 한다.

 "난 그냥 내가 태어난 곳에서 조용히 일생을 마치고 싶을 뿐이다. 손바닥만한 땅이지만 외지 사람들이 팔라고 해도 안 팔았다. 제발 좀 조용히 살고 싶다. 타인에게 피해 안 주고 맘 편히 내 땅 일구고 갯벌 나가서 조개 캐먹고…참 많이도 돌아왔다"

 술만 마시면 매번 하는 그의 이야기다. 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친구의 빈 잔에 술을 채웠다.

 해가 떨어진다. 슬슬 배가 고파왔고 저녁을 차리고 있을 집사람이 떠오른다.

 결국 아들에게 말을 건넸고 아들은 여전히 말 없이 차에 올랐다. 하지만 출발할 때 아들 얼굴에 드리웠던 그늘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이니 말하지 않았겠지. 나도 그냥 저 바다처럼 말 없이 아들을 받아들여야겠다.

 자주 와야겠다.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평화로운 자연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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