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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구 인천시관광특별보좌관

한 남자가 욕실에 들어가 샤워 물을 틀었는데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이 쏟아져 내린다. 당황한 남자는 황급히 샤워 꼭지를 뜨거운 물이 나오는 빨간색 방향으로 힘껏 돌린다. 그러자 이번엔 피부가 익을 듯 뜨거운 물세례다.

 어깻죽지를 벌겋게 데인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욕실을 뛰쳐나온다. 남자는 몸 씻는 건 생각도 못하고 냉탕과 열탕을 오가다가 화상만 입고 말았다. 그는 덴 곳에 연고를 바르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나무라며 크게 한숨을 내쉰다.

 누구나 한두 번쯤은 겪어 봤음직한 이야기다. 그냥 피식 웃어 넘길 이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저명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Friedman)은 자신의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을 설명하는 데 절묘하게 활용했다. 그는 시장이 조금이라도 침체 혹은 과열되는 양상을 보일라치면 샤워실의 그 남자처럼 정부나 중앙은행이 끼어 들어 호들갑스럽게 수도꼭지를 돌려대는 통에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고 꼬집으며 그걸 ‘샤워실의 바보(fool in shower room)’라 불렀다.

 최근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의 보복조치가 이어지자 그동안 중국시장에 공을 들이던 기업이나 일부 정부기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특히 씀씀이 큰 중국 관광객에게 목을 매던 관광업계는 그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뒤늦게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느니 내수 관광을 활성화해야 한다느니 하는 처방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진즉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했어야 한다는 자성론도 간간이 들린다.

 우리 인천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필자는 그동안 중국에 편중된 관광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본보 1월 6일자 칼럼에서도 그랬다. 그러면서 내수(intra bound) 관광과 개별 외래 관광객(FIT)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을 강화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그때만 해도 중국 관광객의 위력이 워낙 기세등등하던 때인지라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공허한 외침이 돼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지금은 그게 영 헛소리만은 아니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어쨌든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업계나 정부 모두 조금 더 신중한 대처가 필요하다.

 ‘샤워실의 바보’처럼 조급하게 수도꼭지를 돌리다가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시장을 다변화한다며 중국을 내팽개친다면 머잖아 아예 남남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들인 공이 아까워서라도 중국과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그래야 작금의 사태가 진정되고 난 후 그들과 다시 어깨동무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눈 여겨 봐야 할 사례가 있다. 바로 제주도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 역시 사드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지만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제주도는 여전히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중국 관광객의 빈자리를 내국인과 일본과 동남아 관광객이 대신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제주의 관광객 수는 예년과 비교해 크게 줄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의 사례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사실 우리의 관광 정책은 ‘모셔오는 관광’이었다.

 제주도도 그랬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무사증 제도가 대표적인 ‘모시는 관광정책’이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굳이 그러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나 싶다. 천혜의 자연 환경과 섬 곳곳에 빽빽하게 들어선 관광 유희 시설들, 육지에선 맛보기 힘든 진귀한 먹거리에 손님맞이에 익숙한 섬 특유의 환대정신까지 잘 갖춰진 곳이니 외국인들에게 특권을 주면서까지 모셔오지 않아도 ‘올 사람은 올 곳’이 제주였던 것이다. 프랑스나 스페인 같은 관광대국처럼 말이다.

 제주의 사례를 세심히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제주처럼 내외국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관광지를 만들어 보자는 거다.

 관광객이 기꺼이 찾아오고 한껏 머물며 맘껏 돈을 쓰는 환경과 시스템을 갖추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타깃은 바다 건너 중국인들이 아니라 국내 관광객으로 우선 설정하면 어떨까 싶다.

 제주도처럼 우리 국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야 외국인 관광객들도 오고 싶어 하는 곳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수관광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면 사드와 같은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제주처럼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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