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하는 일자리위원회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위원장은 대통령, 부위원장은 이용섭 정책특보가 맡고 그 밑으로 관계부처 장관, 국책연구기관장 등 당연직 15명과 노사단체 대표 및 각계 전문가 15명이 참여키로 했다. 언뜻 노사정위원회와 비슷하지만 ‘일자리’라는 명확한 어젠다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정책집행 위원회로 규정할 수 있을 듯하다. 현재까지 언론을 통해 나타난 일자리위원회의 키워드는 ‘노동시간 단축+비정규직 제로시대’로 요약된다. 바꿔 말해 고용 창출보다는 일자리 나누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봐야 한다. 일자리 나누기는 경기변동에 따른 노동수요 감소를 ‘구조조정이나 고용축소보다 노동시간의 조정’을 통해 극복해 나가는 방법이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이 감소하고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지만, 실업률을 줄여 소비위축을 억제하는 장점도 갖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자리 나누기는 자유주의의 원조인 미국에서 최초로 시도됐다. 1930년대 대공황이 발생하자 대통령이 일자리 나누기 운동을 제안했고, GM·듀폰을 위시로 3천500여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임금 20% 감축,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일자리 여력을 늘려 나갔다. 불황기 고용유지에 초점을 맞춘 독일의 하르츠 개혁도 사실은 미국식 일자리 나누기를 정부가 주도하는 형태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민간이 주도한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은 출발부터가 다르다. 목적 자체도 일자리 나누기가 아닌 고용 창출에 있었다. 근로자들 스스로가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대가로 비정규직을 용인했고, 대신 ‘사회보험, 시간당 임금, 근로환경’ 측면에서 비정규직도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받기로 한 것이다.

 성장이 없는 상황에서 정규직에 대한 처우 변화없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자는 것은 근로자 일부를 해고하든가 그게 아니면 기업을 접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의 재정 여력과 노동의 총수요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OECD에 따른 노동시간 축소가 기본방향이라면 선택은 두가지 뿐이다. 네덜란드처럼 노동의 유연성 확보를 통해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든가, 미국·독일처럼 정규직의 양보를 통해 일자리 나누기를 실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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