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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2000년 대 초반부터인가 인조잔디 운동장과 우레탄 트랙이 학교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물 빠짐이 좋고 맨 땅 운동장에 비하면 먼지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깨끗해 보이기까지 해서 관리하기에도 편리하기 때문에 많은 학교가 설치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수억 원이 족히 필요한 예산 때문에 매년 일정 수의 학교에만 시혜를 베풀듯이 설치돼 왔다.

 설치하지 못한 학교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인조잔디 운동장과 우레탄 트랙은 이제 이도저도 못할 애물단지로 변하고 말았다. 지난해 전국의 모든 학교를 전수 조사한 결과 64%의 학교에서 납과 같은 중금속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운동장 시설에 수천억을 쏟아 부은 정부가 이제는 우레탄 트랙 사용금지 시설물 설치 등 안전지침까지 내렸다고 한다. 이미 설치된 시설을 걷어내고 유해물질 기준에 적합한 우레탄 트랙으로 재시공하거나 마사토를 깔기 시작한 학교도 있다지만 당장 막대한 예산이 필요할 테니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인조잔디 운동장과 우레탄 트랙을 마냥 두고만 볼 수도 없는 일이니 교육청이나 해당 학교의 고민을 짐작할 수 있다. 학교는 청소년들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가장 많은 시간 동안 있어야 하는 생활공간이다. 그러므로 학교는 당연히 학생들의 건강과 인성 발달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곳일 수밖에 없다. 필자가 십여 년 전 근무하던 학교의 모습을 한 포럼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 적이 있다. 물론 그 학교뿐만 아니라 그 당시 다른 학교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그런 모습이었다.

 "먼지 풀풀 날리는 황량한 운동장, 큰 빗자루를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 몇 그루, 열 단도 더 넘는 운동장의 콘크리트 스탠드, 교내 구석구석을 덮고 있는 아스콘 포장길, 녹을 잔뜩 덮어쓰고 있는 운동기구, 이런 곳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심성 바르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욕심이다."

 운동장에 먼지도 나지 않고 깨끗해 보이는 인조잔디와 우레탄 트랙을 깔자는 말이 아니라 학교의 구석구석 빈 공간에 나무를 심어 학생들에게 작은 숲이라도 만들어 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언을 하기 위한 서두였다.

 세계 보건기구에서는 1인당 녹지 면적이 최소 9㎡(3평)은 돼야 건강한 삶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녹색의 공간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필수적인 환경 조건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잎 면적이 1천600㎡인 느티나무 한 그루가 연간 이산화탄소 2.5t을 흡수하고, 성인 7명이 연간 소비할 수 있는 1.8t의 산소도 배출한다고 한다. 산림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축구장 약 1.3배 크기의 숲이 연간 미세먼지(PM10) 46㎏과 이산화질소 52㎏, 이산화황 24㎏, 오존 46㎏의 오염물질을 총 168㎏ 흡수한다고 한다. 나날이 문제가 커지고 있는 미세먼지 대책에도 숲이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다. 학교 숲은 또 하나의 교실이고 중요한 체험학습의 공간이다. 학생들이 소풍이나 체험학습 활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교실 안에서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직접 찾아가서 살피고 경험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본다면 운동장에 숲을 만들면 운동장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들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생활공간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학습의 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운동장의 여건과 기능이 넓어지고 향상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요즈음 신축되는 아파트마다 주차장을 지하로 돌리고 지상을 모두 녹지로 꾸미는 것처럼 운동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해야 한다. 도시 곳곳에 공원을 조성해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드는 일은 지자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인체에 유해하다는 인조잔디와 우레탄 트랙 운동장을 치워주고, 학교의 구석구석 빈 공간마다 나무를 심는 일 또한 지자체가 나서야 할 일이다.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1인당 생활권 도시림 면적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학교 운동장에 나무를 심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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