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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전오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08년에 강화도 남단을 헤매고 다녔다. 강화갯벌센터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찾는 것이 나의 미션이었다. 겨울에 시작된 일인데 봄이 되어도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꽁꽁 얼어붙은 갯벌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갯벌은 어민들의 고단한 삶을 떠오르게 할 뿐 책에서 본 아름다운 경관이나 갯벌의 생명력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강화군에서는 내가 시 산하 연구기관에 있기에 믿고 과제를 줬지만 강화도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던 전문가들이나 지역 활동가들의 입장에서는 굴러온 돌이었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구박을 받으며,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던 지역활동가가 내게 준 실망을 넘어서면서 한발 한발 현장 상황을 파악해 나갔지만 대안은 여전히 안갯속처럼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연구라는 것이 늘 그러하듯이 자료를 찾고 현장을 답사하고 여러 관련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지만 결론, 대안은 연구자의 몫이다.

쉬운 대안이 있다면 왜 많은 돈을 들여 용역을 맡기겠는가? 그랬다. 나 역시 대안이 없어 헤매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갯벌이 내가 전공한 숲 생태처럼 내게 딱 맞는 옷처럼 편하지 않다는 것이었고 갯벌의 힘이나 생명력이 내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래저래 지친 몸을 이끌고 물 빠진 동검도 선착장 끝에 털석 주저 앉았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몇몇 어민들이 배를 움직여 떠나고 있었을 뿐 갯벌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굳이 있다면 괭이갈매기 몇 마리 정도 있었다. 내 머릿속도, 갯벌에도 아무 것도 없는 진공상태가 꽤나 오래 지난 듯했다. 약간 자포자기하는 맘까지 일어나는 그때 나는 천지창조와 같은 장엄한 광경을 보았다.

나 혼자 앉아 있는 선착장 끝자락인데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더니 무수한 수천, 수만의 칠게들이 나타났다. 갯벌에 그렇게 많은 구멍이 있었나? 그 구멍마다 그 많은 칠게들이 살고 있다니 칠게들은 좌우의 집게손으로 무언가 부지런히 먹으며 갯벌 위를 돌아다녔고 그 소리는 주말에 찾은 소래포구에 있는 어시장 같다고나 할까?

이 친구들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내가 현장조사를 한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닐 땐 보이지 않더니 모든 걸 내려 놓으려는 순간 거대한 파도처럼 내 앞에 나타난 이들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동검도 남단 선착장 끝에서 받은 칠게들의 놀라운 에너지에 힘입어 강화갯벌센터의 관리를 더 강화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자연의 감흥을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면서 과제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만났던 많은 분들은 지금도 교류하면서 인천에서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시간은 흘러 2015∼2016년 인천시 자연환경을 조사하기 위해 강화도뿐 아니라 인천 전역을 돌아다녔다. 새들이 나올 것 같은 곳은 빠짐없이 뒤지고 다녔다. 조사팀이 별도로 있었지만 현장감 없이 정책을 개발하는 것은 내게 용납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무수한 시간을 현장에서 보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의 활동이 적은 곳이나 적은 시간대인 밤에 무수한 생명이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꾸려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시가 커지면서 도심으로부터 자연은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났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많은 생명들이 그들의 삶터를 잃고 떠났거나 생명을 잃었다. 지금도 우리 도시는 성장에 목말라하기에 앞으로도 자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활동을 멈추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버리기엔 아까운, 사라지게 하기엔 너무나 소중한 신의 창조물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 그들과 공존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동검도의 수천, 수만 마리의 칠게가 내게 알려준 그들 왕국의 비밀을 함께 나누고 싶다. 강렬한 생명의 힘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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