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장애인단체들이 22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부양의무제 폐지 공약을 지켜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부양의무제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면 부모·가족 등 ‘부양의무자’가 소득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는 제도다. 빈민·장애인단체는 수년간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가난한 이들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이 제도의 폐지를 요구해 왔고,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 토론회에서 이 제도 폐지를 약속한 바 있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기초생활 수급권자의 1촌 직계혈족을 부양의무자로 정의하고 있다. 문제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신청자가 아무리 생활고에 시달려도 부모나 자식 중 누구라도 재산이 있거나 수입이 있으면 생계비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돼 있다. 경기침체, 실업난, 물가고 등을 고려한다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늘어나야 하나 도리어 수급자가 감소하다가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은 법과 현실의 괴리가 빚어낸 부양의무제 탓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노인 복지는 최하위권, 노인 자살률은 최상위권에 놓여 있다. 부양의무제 폐지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하지만 부양의무제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유는 우선 재원 면에서 연 10조 원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전통적 유교사상으로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어 국가가 지원에 나서면 그동안 부양의무를 잘해오던 자녀마저도 국가에 책임을 미룰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대가족제도 아래 부모 공양을 미풍양속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예전처럼 부모 부양을 의무로 여기지 않고, 심지어 부양을 거부하거나 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세태가 야박해진 탓도 있지만 자식들도 제 앞가림을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빈곤층을 복지 사각지대에 내모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문제는 재원이다. 아무리 선의의 정책이라도 당장 도입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따라서 단계적으로 폐지하되, 당장은 시급한 상황에 처한 이들만이라도 부양의무에서 우선 면제하는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세태변화에 대응할 합리적인 복지제도의 정비가 필요한 시점임을 정치권은 인식해 주기 바란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