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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조 전 인천전자마이스터고교장
얼마 전 외근을 나가다가 ‘공사 중! 잠깐 돌아가세요’ 하는 임시 교통표지판을 보고도 바빠서 앞차를 따라서 그대로 진입했다가 도로공사 때문에 다시 후진(後進)해 입구를 빠져 나오느라고 애를 태웠다. 물론 바쁜 시간에 더욱 늦어버린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가끔 운전을 하다 보면 다른 길로 돌아가라는 표지판을 보게 된다. 도로공사나 무슨 다급한 일이 벌어져 길이 막혔으니 다른 길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돌아간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시간도 더 걸릴 뿐만 아니라 낯선 길의 불안까지 겹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처럼 헛고생 더하지 않으려면 순순히 돌아가는 길이 현명한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에도 가끔 ‘돌아가라’는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인생길에서 뜻하지 않는 사건에 부딪칠 때가 있다. 몸에 병이 들 때가 있다. 사업에 실패할 때도 있다. 사랑에 금이 갈 때도 있다. 자녀들 때문에 근심거리가 생길 때도 있다. 괴롭고 짜증스럽고 불안한 벽이 가로 막힌다.

 그런데 인생살이는 이때가 중요한 고빗길이다. 이때에 현명한 사람은 지긋이 인내한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처럼 다소 시간이 걸이고 불안하지만 그래도 참고 돌아간다. 좀 멀고 먼지나는 길이라도 돌아가는 길이 결국은 안전한 길이다. 그런데 조급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무리해 돌아가라는 사인을 무시하고 돌진했다가 결국은 더 큰 괴로움과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우리 인생길에서 고난이 온다는 것은 ‘끝났다’라는 표시가 아니라 ‘돌아가라’는 표시이다. Stop이 아니라 Detour이다. 밀턴은 두 눈이 밝았을 때는 3류 정치인이었지만 두 눈이 실명을 당한 뒤에는 인류에게 영원한 빛을 던져주는 명작 「실낙원(失樂園)」을 썼다. 실명(失明)이 밀턴에게 흑암을 준 것이 아니라 도리어 광명을 준 것이었다. 그는 인생의 고난을 Stop(멈춰라) 사인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Detour(돌아가세요) 사인으로 받은 것이다. 베토벤은 귀머거리가 된 후에야 더 좋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도 역시 육체의 불구를 Stop으로가 아니라 Detour로 받은 것이다.

 문호(文豪) 스티븐슨도 폐결핵으로 몹시 고통을 받았고 청각까지 상실했다. 그러나 그때 그는 보물섬을 위시한 수많은 모험소설을 써서 모험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병에 스티븐슨의 모험이 막을 내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통이 커갈수록 그의 꿈과 모험은 더욱 힘차게 영감을 받았던 것이다. 구약성경에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넘실거리는 홍해가 가로막고 섰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절망의 고해(苦海)가 아니었다. 그것은 도리어 애굽의 추격을 영원히 막아주는 보호의 바다였다. 좋은 강철이 되기 위해서는 뜨거운 용광로를 거쳐야 한다. 10Kg의 쇠가 쇳덩이 그대로 있으면 1만 원짜리의 가격이 된다. 그러나 여러 번 불에 들어갔다 나와서 말발굽이 되면 10만 원짜리가 된다. 더 여러 번 담금질해서 바늘을 만들면 100만 원어치의 바늘이 되며, 그것으로 더 적게 스프링을 만든다면 500만 원어치가 만들어질 수 있으며 인공위성에 쓰이는 에어 체인(Air Chain)을 만든다면 1천만 원짜리가 된다고 한다.

 쇠의 크기는 같지만 얼마나 많이 뜨거운 불 속에서 연단을 받고 망치질을 당하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가치의 격차를 내고 만다. 사람도 그렇다. 고통을 잘 소화해내면 그 인생의 값을 올리는 기회가 된다. 나는 나름대로 훌륭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거의 공통점이 고난이 없이 값진 인생을 산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바람이 불 때 연이 높이 난다. 돛단배도 바람이 불어야 나간다. 겨울이 있어야 모든 나무뿌리가 튼튼해지고 뿌리를 깊게 내린다. 그리고 보면 도대체 고난 한번 제대로 당하지 않고 서러움 한번 제대로 당해 보지 않고 인생을 맛을 알겠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가?

 미식가들에 의하면, 맛 중에 가장 저급한 맛이 단맛이고 가장 고급스러운 맛은 쓴맛이라고 한다. 사람이 쓴맛을 알아야 아량도 생기고 지혜도 생기고 남의 처지도 이해하게 된다. 인생길에서 만난 여러 가지 고난은 ‘Stop(멈춰라)’이 아니라 ‘Detour(돌아가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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