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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문 변호사
지난해 형사사건을 수임 받은 적이 있다. 1990년대부터 2013년도까지 함께 부동산중개업을 동업으로 해오던 피고인이 자신이 단독으로 매수한 부동산에 대하여, 뒤늦게 고소인이 공동으로 매수했다고 주장하면서 횡령 혐의로 고소를 제기한 사건이었다. 검찰 조사과에서 정밀하게 조사를 받았고, 이때 변호인인 필자가 입회하여 피고인이 조사를 받았다. 몇 차례 대질 조사를 거치기도 했다. 검찰 조사관은 최후에 피의자에 대하여 혐의 없음 의견으로 송치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을 통지받은 변호인이었던 필자는 이 사실을 피고인에게 통지했다. 그 후 배당을 받은 주임검사를 찾아가서 하루속히 사건을 종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사건이 재배당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재배당을 받은 주임검사는 느닷없이 피의자를 소환하면서 대질 신문을 하겠다고 통지해왔다. 또다시 변호인이 입회해 부득이하게 피의자 조사를 받게 됐다.

 그런데 재판기일과 중복되는 바람에 필자는 부득이 입회를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얼마 후 피의자는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후일 피고인으로부터 설명을 들어보니, 변호인 입회가 끝나자마자 주임검사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했다. 변호인이 입회를 할 당시에는 절차에 맞게 조사를 하다가, 변호인이 자리를 떠나니까 피의자를 윽박지르고, 피의자의 주장을 반박하고, 오히려 고소인의 주장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 피고인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조사과에서 조사한 것 말고 대질 신문 한 차례, 그리고 피고인이 금전을 차용한 시누이들에 대한 조사를 받은 이후 주임검사는 피고인에 대하여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년에 걸친 재판 과정을 통해서 피고인은 지난 5월 18일 1심 법원의 선고를 받았다. 기소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라는 판결을 받았다. 피고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사실적으로도, 법리적으로도 무죄로 판결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주임검사의 판단이 피고인으로 하여금,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통과 압박감 속에서 생활하게 했다. 최종 결과는 앞으로 상급심을 지켜봐야 할 것이지만, 문득 이 사건의 경과를 지켜보면서, 진실로 정의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교육 상담가인 웨인 다이어의 「행복한 이기주의자」라는 책을 보면 제8장 ‘정의의 덫을 피하다’ 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껏 존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져 있지 않다. 새는 벌레를 잡아먹는다. 벌레에게는 공평치 않은 일이다. 거미는 파리를 잡아먹는다. 파리에게는 공평치 않은 일이다. 정의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개념이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늘 불공평하다. 하나 행복을 택하고 불행을 택하는 것은 정의의 부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른바 정의 부재론이다. 정의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웨인 다이어의 주장이다. 새가 벌레를, 거미가 파리를 잡아먹듯이, 주임검사가 피의자를 잡아먹는다고 하면 지나칠까? 주임검사는 오로지 진실을 쫓는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고소인이 주장한 허위사실에 얽매어 피의자의 주장을 묵살한다. 이러한 세상이라면 웨인 다이어의 주장대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법관의 올바른 법리 판단으로 피고인은 마침내 굴레를 벗어났다. 정의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주임검사는 피의자를 잡아먹었지만, 법관은 주임검사를 다시 잡아먹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세상이라면 과연 정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법관들이 만든 판결로 세상의 정의는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정의를 외치던 기관이 은밀한 곳에서 ‘부정의’를 만들어 낸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권과 업무 지시를 통해 개혁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하면서, 취임 둘째 날인 11일 조국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을 임명해 검찰 개혁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리고 ‘돈 봉투 만찬’ 파문의 주인공인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 관련자들에 대한 감찰과 더불어 좌천인사를 지시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카드로 검찰 개혁의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 것이다. 검사 재직과정에서 올바른 심성과 올바른 행동을 해왔던 행동하는 양심들을 검찰의 전면에 내걸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인간 심성이 곧 바로 직선으로 서지 않는 한, 정의는 세워지지 않는다. 임마누엘 칸트의 지적대로, "비틀어진 나무로 만들 수 있는 직선은 없다." 올바르게 자란 내부의 검찰인사들을 중용하는 검찰개혁,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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