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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
문재인 대통령이 초대 내각 구성에 한창 골몰하고 있다. 보궐선거로 치러진 대선이었기에 정권을 인수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때문에 당선된 지 3주가 다 돼가도록 국무총리를 비롯해 장관 임명 절차를 밟고 있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와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등에 대한 위장전입, 세금문제 등의 의혹이 제기되면서 문재인 정부 제1기 내각 출범이 초기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문 대통령이 혁신(革新)을 강조하며 그동안 쌓이고 쌓인 적폐(積弊) 청산 작업에 돌입했다. 이의 실천을 위한 새로운 내각 구성에 속도를 가하고 있다. 조각(組閣)이 급하다 하여 조급증으로 조악(粗惡)한 내각을 꾸려서는 안 된다. 잘못된 인사로 인한 폐해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어느 시대에나 옳은 말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제청되는 총리·장관 후보들마다 이른바 ‘고위공직자 4대 필수과목’으로 풍자되는 ‘위장전입, 탈세, 병역면제, 부동산 투기’ 이수에 발목이 잡히곤 해 왔다. 이런 인사들을 대상으로 도덕성까지 검증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새 정부 출범 초기다. ‘문재인호(號)’가 새 깃발을 높이 올려 달고 순풍만범(順風滿帆)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 했다. 백성의 신의가 없어진다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민심이 천심이었습니다. 나라가 어려운 때마다 나라를 구한 것은 국민이었습니다. …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문재인 후보의 제19대 대통령선거 책자형 선거공보물에는 ‘인사 5원칙’이 담겨 있다. 이 공보책자에는 "병역, 부동산, 세금, 위장전입, 논문에 문제 없는 사람만 고위공직자가 될 것입니다" 라고 천명한 것이 그것이다. 지지 유권자들은 공약을 굳게 믿었다. 표를 주었다. 그래서 당선됐다. 문재인 정부는 벌써부터 이 같은 인사원칙에 예외 항목을 늘려 나가려 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이 사실이라는 암초를 만나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인사원칙 위배 논란과 관련, "선거 캠페인과 국정 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다"고 해명하고 야권의 양해를 구했다. 문 대통령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며 선거공보물을 통해 앞에 열거한 다섯 가지 인사원칙을 제시했던 것이다. 아직 이 같은 원칙이 쓰여진 종이의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상태다. 적폐청산을 한다는 새 정부가 인사에서 예외를 들어가며 ‘이해를 구한다’는 등의 모순된 논리로 국민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오늘자로 문재인 새 정부 출범 20일째다. 대통령에 당선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어 가는지 씁쓸할 뿐이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과거 나라에 인사가 있을 때마다 중국 주(周)나라 태공망(太公望)의 인사원칙을 인용해 참고토록 권하곤 했다. 3천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인재 기용 준칙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인재를 발탁하면서 여덟 가지를 검증하는 ‘팔징지법(八徵之法)’이 그것이다. "첫째, 문지이언 이관기상(問之以言 以觀其詳):질문을 던져 일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지를 관찰하라. 둘째, 궁지이사 이관기변(窮之以辭 以觀其變):말로써 궁지에 몰아넣고 위기상황을 맞게 해 그 사람의 대처 능력을 관찰하라. 셋째, 여지간첩 이관기성(與之間諜 以觀其誠):첩자를 통해 그 사람의 성실성을 관찰토록 하라. 넷째, 명백현문 이관기덕(明白顯問 以觀其德):명백한 질문으로 그 사람의 덕성을 살피라. 다섯째, 사지이재 이관기렴(使之以財 以觀其廉):재물을 맡겨 보아 그 사람의 청렴성을 관찰하라. 여섯째, 시지이색 이관기정(試之以色 以觀其貞):여색으로 시험해 보아 그 사람의 정조관념을 살펴보라. 일곱째, 고지이난 이관기용(告之以難 以觀其勇):어려운 상황을 알려 주고 그 사람의 용기를 관찰하라. 여덟째, 취지이주 이관기태(醉之以酒 以觀其態):술을 마시게 해 취하게 한 후 그 사람의 취중 태도를 살피라."

 인재(人材)는 많다. 단지 찾지 못할 뿐이다. 삼고초려 (三顧草廬)끝에 제갈량(諸葛亮)을 구한 유비(劉備)처럼, 강가에서 백발에 낚시 드리운 강여상(姜呂尙)을 보고, 세상을 경륜할 비범한 능력이 있음을 발견해 등용한 3천 년 전 주나라 문왕(文王)처럼 널리 인재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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