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jpg
▲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지난해 6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에서 예상과 달리 탈퇴안이 가결되면서 소위 브렉시트(Brexit)가 현실화되었다. 11월에는 보호무역주의와 이민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21세기 새로운 고립주의 즉 신고립주의(neo-isolationism)가 하나의 시대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됐다. 자유무역과 세계화, 개방을 중심 사상으로 하여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문명의 주류 패러다임이었던 자유주의 체제가 심각하게 타격을 받게 된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북한의 연이은 핵과 미사일 실험에 따른 안보위기와 더불어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과 파면, 구속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 위기를 겪게 됐다. 얼마 전 출범한 새 정부는 그간의 국정 공백을 메우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라는 국민의 뜨거운 열망과 기대를 받으면서 국내외 산적한 난제를 해결해야 할 힘든 과제를 떠안게 됐다.

 다행인 것은 프랑스 대선에서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극우세력을 누르고 중도우파인 마크롱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일단은 당장의 유럽연합 탈퇴 움직임은 막았지만 그간 유럽연합의 통합 추진 방식 전반에 관한 근본적 개혁과 수술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당초 1970년대 영국의 유럽연합 가입도 다른 주요 유럽 국가들보다는 늦게 이루어 진 것이고 이후 2000년대 초 유로존 출범 때에도 영국은 가입을 하지 않았었다. 과거 대영제국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영국으로서는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고 이번의 탈퇴에 노년층과 농촌, 소도시 주민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도 이러한 영국인들의 자존심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유럽연합의 미래를 놓고 많은 연구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는 이번 브렉시트를 계기로 유럽 통합을 질적 고도화 그리고 회원국 간 형평성 제고, 개별 회원국의 자율성 제고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소위 ‘신축적 통합(flexible integration)’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데에 대체적 공감대가 마련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아직도 지역통합의 확고한 동력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아시아, 그 중에서도 동북아이다. 그간 유럽의 경험을 벤치마킹해 나름대로 지역통합 추진의 청사진과 로드맵을 만들어 왔던 아시아로서는 더 이상 유럽 모델이 교과서가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원래 유럽과 아시아 간에는 역사와 문화, 정치경제 제도의 차이 등 유럽의 경험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어쩌면 이번 유럽통합의 위기가 아시아 통합의 비전을 백지에서 다시금 새롭게 짜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 10개국이 만든 지역협력체인 동남아국가연합(ASEAN)은 유럽과 달리 이미 아세안 방식(ASEAN Way)이라는 독자적 통합 방식을 만들어 왔다. 회원국의 배타적 특혜 조치에 상응하는 구속력 있는 통합의 룰과 제도 등이 유럽 모델의 특징이라면 아세안 방식은 회원국의 자율성과 개별국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느슨한 형태의 통합을 지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향후 동북아나 전체 아시아의 통합의 방향은 유럽과 아세안의 중간 정도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신고립주의 발흥의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기본 동력이라 할 수 있는 무한경쟁과 효율성 극대화가 주범 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과거 국내 차원에서 빈부격차가 진행되던 것이 세계화와 정보화에 힘입어 글로벌 차원에서 초 단위로 경제활동이 진행되면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국경을 넘어 극대화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글로벌 차원에서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고 인류 전체의 복지를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글로벌 컨트롤 타워가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 유엔이 이러한 기능을 부분적으로 수행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에는 미국과 유럽연합, 중국, 일본 등 경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국가들이 참여해 글로벌 복지경제관리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태스크포스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지역적으로는 우선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이 모여 있는 동북아에서 지역협력의 한 형태로서 이를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핵 위기로 신냉전 시기로 회귀하는 동북아에서 당면한 안보위기를 해결하면서 인류 보편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구조를 창출해 내기를 희망한다면 너무 이상적인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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