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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독일 남부의 도시 뮌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10여 년 전의 일이다. 1972년 하계올림픽의 주경기장 주변 생태공원을 둘러볼 때였다. 분명히 아파트단지였을 공간에 버젓이 텃밭이 있었다. 가이드를 맡은 관련 전공의 유학생은 아파트 자리였다고 귀띔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첨단 시설을 갖춘 아파트를 높다랗게 지어 분양했겠지만 뮌헨시는 달랐다고 한다. 독일의 다른 시보다 부족한 건 아파트가 아니라 텃밭이기에 시민의 의견을 모아 텃밭을 조성해 분양했다는 게 아닌가. 그 비싼 땅을.

 인천도 텃밭의 인기가 점점 높아진다. 해마다 다시 분양하는 까닭에 연속성이 없다고 아쉬워하는 시민이 많다. 텃밭 면적이 좁기 때문인데, 그나마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뮌헨과 달리 개발이 유보돼 비어 있는 곳을 임시로 분양하기 때문이리라.

 한데 주민이 텃밭으로 사용하는 땅을 밀어내고 꽃밭으로 바꾼 곳도 있다. 동구 배다리 텃밭이 그렇다. 산업도로로 쓸려갈 공간을 주민들이 힘겹게 막고 어린이들의 생태 놀이터와 텃밭으로 조성했는데, 약속을 어긴 구청에서 창의적 시민 행동을 짓밟은 것이다.

 구청장 시각으로 텃밭보다 꽃밭이 더 예쁘다고 여겼는지 모른다. 구청장의 지시를 모르는 척하기 어려웠을 산하 공무원들은 전 구청장이 주민과 맺은 약속을 잊지 않았을 텐데, 인사권이 무서웠는지 현 구청장의 행동대원이 됐다. 정책 결정과 집행에 앞서 구청장은 지역주민의 의견을 먼저 물어야 옳다. 대의제민주주의 본령이 그렇건만 구청장은 마치 왕이라도 된 양 짓밟았고 민주주의가 만신창이가 되는 순간이었는데, 혹시 인기 드라마의 여운에 따라 촬영지를 찾는 관광객을 핑계로 내세웠을까?

 텃밭은 회색도시의 시민에게 정주의식을 심어준다. 들판이 사라진 도시에서 고향의 이미지를 구하며 아파트에서 외롭던 주민들은 비로소 이웃과 가까워진다. 유럽에서 독일의 텃밭이 특별한 건 아니다. 유럽뿐 아니라 일본과 북미권 국가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도시는 텃밭을 확보하려 무척 노력한다. 집과 가까운 텃밭을 분양 받은 시민은 주말에 이웃과 만나며 우정을 쌓고 아이들은 땅에서 흙을 만지며 평생 친구를 사귄다. 그에 적극 호응하는 시 당국은 텃밭을 장기간 분양하며 시민들이 지역에 뿌리 내리도록 배려한다. 텃밭 확보가 시 정책의 평가와 밀접하니 시장은 최선을 다한다. 뮌헨이 그랬는데, 인천 동구는 역행했다.

 회색도시에서 텃밭은 주민의 건강을 도모해준다. 이웃과 함께 땀을 흘리며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므로 농약을 자제하니, 식구에게 안전한 농작물을 어느 정도 공급해주지만 그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훌륭한 녹지가 되어 여름이면 뜨거워지는 도시를 식혀주고 빗물을 머금으며 재해를 완충한다. 그뿐인가. 최근 빈번해진 미세먼지를 상당히 줄여줄 게 틀림없다. 그러므로 근린공원 이상으로 인기가 높은 텃밭은 도시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그러므로 재개발이 필요한 넓은 공장지대나 주택공간을 텃밭으로 조성해 시민에게 분양하는 정책은 독일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5월 4번째 주, 부평구는 작년에 이어 지속가능발전 주간행사를 진행했다. 오늘도 내일도 개발하자는 게 지속가능발전의 의미일 리 없다. 지나친 욕심으로 다음 세대가 누릴 행복을 빼앗지 않는 발전을 말한다. 그때 발전은 행복의 다른 말이다. 행복은 돈 많고 똑똑한 자의 전유가 아니다. 이웃은 물론이고 다음 세대와 나눌 수 있어야 행복은 지속가능하다. 농업은 생존을 가장 확실하게 지탱하는 기반인데, 농사 경험을 잊은 우리는 농업의 가치를 잃었다. 이번 부평구 지속가능발전 주간행사의 주제는 도시농업이었다.

 뷔페식당의 산해진미와 그 재료는 대부분 수입했다. 농작물 경작과 수송 과정에 막대한 석유를 소비했다. 첨가물도 적지 않다. 블랙홀처럼 시민 지갑의 돈을 빨아들이는 대형 슈퍼마켓의 온갖 음식은 1주일 만에 소비된다. 편의에 취한 시민들은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민의 노고를 모르지만 텃밭을 경험하면 달라진다. 농민에게 고맙고 또 미안해진다. 비로소 땅의 가치를 알고 다음 세대의 건강과 행복에 민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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