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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단위, 5년 단위, 10년 단위로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에 따라 착착, 순리대로 살아가는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사정이 다르다. 불확실성 시대로 접어든 지금, 한치 앞도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뜻대로 안 풀린다고 해서 모든 걸 접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살아있는 한, 안 되는 일도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최악의 상황이라도 버텨봐야 한다. 이처럼 맘 먹은 대로 일이 전개되지 않을 때 프랑스 사람들을 두 손을 들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세라비 (C’est la vie)’. 우리 말로는 ‘그게 인생인 거지’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 표현은 힘든 상황뿐 아니라 행복할 때에도 사용된다. 즐거운 인생, 세라비!

 97년 제작된 일본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는 희로애락을 담은 우리네 인생사를 유쾌한 터치로 그린 작품으로, 개봉 당시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흥행과 비평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초보 라디오 작가 미야코는 처음 경험하는 방송 일이 낯설긴 하지만 자신의 대본으로 리허설을 마친 드라마를 듣고 있자니 감개무량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특별히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이 드라마의 방송시간을 1시간 앞둔 순간, 여주인공 역의 스타 성우가 배역 이름을 바꿔줄 것을 강하게 주장하며 갈등이 시작된다. 스타의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배역 이름은 작품과는 동떨어진 영어 식 이름으로 변경되어 갈등이 봉합되는 듯 보였으나, 이에 상대 배역들도 모두 영어 이름으로 바꿔줄 것을 요청하면서 드라마는 일본이 아닌 미국 배경으로 급선회하게 된다.

 허나 지명과 이름만 바꾸면 해결될 줄 알았던 일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가정 주부는 변호사로, 어부는 파일럿에서 우주 비행사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며 멜로드라마로 쓰여진 기존의 작품은 범죄, 법정, 로맨스, SF 등 다수의 장르를 섭렵하는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을 생방송 도중 임기응변으로 전개해 나간다. 의도와 달리 드라마는 점점 산으로 가고 스태프들은 갈등을 겪지만, 생방송을 시작한 이상 이 이야기는 반드시 끝마쳐야만 한다.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는 라디오 드라마 제작현장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생동감 있게 포착해 낸 작품으로, 스튜디오라는 작은 공간 안에 복잡다단한 우리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펼쳐놓고 있다. 초보 작가 미야코의 바람은 그저 드라마가 대본대로 진행되는 것뿐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각종 이해관계와 이권, 권력과 정치적 기싸움 속에 미야코는 대본이 엉망이 되는 상황을 보다 못해 자신의 이름을 지워 줄 것을 요청한다. 그때 이쪽저쪽 비위를 맞추며 배알도 없어 보이던 제작자는 처음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힌다. 만족할 수 없다고 해서 이름을 지울 수는 없다고, 만족할 만한 작품은 그리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타협하고 자신을 죽여가는 과정 속에서도 이 일을 계속하는 건 언젠가는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라고.

 그렇다. 고결하고 숭고한, 계획대로 성공한 삶을 살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 인생에서 자신의 이름을 철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던가! 좋은 일도, 그렇지 못한 일도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찾아오는 게 인생이다. 비록 어려운 일이 찾아 오더라도 ‘세라비’. 좋은 날도 곧 찾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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