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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연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유라시아에 광활한 영토를 보유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강한 러시아’를 내세우며 신동방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는 기존의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의존을 줄이며 동북아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서 극동·바이칼지역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천연가스 개발에 있어서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왔다. 이와 같은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은 양국의 에너지 수급의 필요성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셰일가스 개발과 공급에 있어서의 미·일 협력체제에 대항하려는 성격도 띠고 있다. 더 나아가 러시아는 사할린에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 전력과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송전망과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일본에 제안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통해서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대규모 육해상 실크로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중국은 유라시아 교통, 에너지, 전력 등의 연계 프로젝트를 추진함으로써 중국 주도의 새로운 경제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위해서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해 이미 70여 개국의 회원국을 확보했는데 이는 일본과 미국이 주도해온 아시아개발은행(ADB)의 회원국 규모를 넘는 수준이다. 또한 최근 중국은 한국을 통과하는 북극항로 ‘일도(一道)’ 개발에도 본격 뛰어들겠다고 밝혔다.

 지난 박근혜 정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Eurasia Initiative)’라는 전략을 통해서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고, 북한에 대한 개방을 유도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 구상인 실크로드 익스프레스는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및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해 우리나라 부산에서 유럽까지 이르는 철도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유라시아 에너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북극항로를 개발해 유라시아의 끝과 끝을 연계한다는 구상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구호에 그쳤을 뿐 구체적인 액션이 거의 없었다. 지난 정부는 북핵문제로 인해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추진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북한이 가로막아 유라시아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것은 지나치게 안일한 현실 인식이다. 거꾸로 우리가 유라시아 협력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전략에서 한반도종단철도를 유라시아 철도망과 연결하겠다는 사업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지난 정부에서 가뜩이나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이 사업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가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유라시아 전략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관계국들과 공동으로 경제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이 사업에 북한을 포함시켜 다국간 경협의 틀 속에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일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기존의 러시아와 북한 협력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최근 중국과 북한 사이에 재개된 훈춘-나진-닝보 물류사업을 연계하는 두만강 유역 개발 프로젝트에 우리나라도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일대일로 및 러시아의 극동·바이칼 지역 개발에 우리의 건설, IT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몽골에 신재생에너지 기지를 건설하는 사업에 동북아 국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유라시아 국가들의 공동 관심사인 북극항로 개발에 있어서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이 협력하는 길을 우리가 주도할 수도 있다.

 기존에 우리나라는 태평양을 통한 자본과 기술 유입을 통해서 발전했다면,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북쪽 대륙인 유라시아에서 생존전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기존에 우리나라가 북한에 가로막혀 대륙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면, 앞으로는 북한을 뛰어넘어 유라시아로 나아가야 한다.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도전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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