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환갑이 넘으신 어머니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푸른잎 채소를 싫어하는 아들의 편식으로 인해 밥을 차려주실 때마다 늘 고민이 많았다. 작년 가을에 결혼한 이후로는 어머니가 아닌 아내에게 종종 핀잔을 듣는다는 점이 달라지긴 했지만 맵고 짜고 단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하는 취향을 바꾸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드문 기회이긴 하지만 속이 편안한 메뉴가 당길 때도 있다. 전날 과음하고 다음 날 해장할 때다. 이럴 때 먹는 메뉴가 있다. 심심하지만 포근한 느낌을 주고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맛. 바로 잔치국수다. 피곤한 아들의 지친 어깨를 다독거려 주는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향수의 맛은 힘들 때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면 왠지 모를 기운을 샘솟게 한다.

 잔치국수는 원래 한국에서는 밀 농사를 거의 짓지 않고 국수를 뽑는 데도 많은 공이 들어가 주로 생일이나 혼례, 회갑연 등 귀한 손님들을 대접하는 잔칫날에 먹었다고 한다. 해외에서 싼값에 수입해 밀가루가 흔해지면서 예전만큼 잔치국수도 귀한 대접을 받진 못하지만 오늘날에도 잔치 이후 하객들에게 대접하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여전히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에 국회 의원회관 식당의 메뉴로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보통 잔치국수는 멸치 육수를 기본으로 먹는 이의 입맛에 맞는 서너 가지의 고명을 얹은 뒤 양념장으로 간을 맞춰 먹으면 된다.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메뉴다. 그런데 막상 만들려고 하면 어머니가 요리해주신 맛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2% 부족하다. 요샌 가까운 편의점이나 마트만 가도 일회용으로 포장된 잔치국수를 만날 수 있지만 역시 부모님 집에서 먹던 맛은 나지 않는다. 그 사이 김치 한 조각도 입에 대지 않던 꼬마는 어느 새 서른살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삼십대가 되면 철이 들 거란 생각을 했지만 여전히 성숙하기까진 멀었지만 한때만 반짝하고 인기를 끄는 메뉴는 오래 가지 못 한다는 가르침 하나는 건질 수는 있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잔치국수처럼 꾸준히 그리워하는 손님들이 있어 가끔씩 찾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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