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는 매우 독특한 조합체계를 가지고 있다. 13자리 가운데 앞의 여섯 자리는 그 사람의 태어난 연·월·일로 이뤄지고, 뒤의 일곱 자리 숫자는 출생연대와 성별, 최초 주민번호 발급지 등으로 조합돼 있다. 경우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중복되는 법이 없고, 일생 동안 변할 일도 없어 개인을 정확하게 식별하는 수단으로써 탁월한 효과를 갖는다. 반면에 주민번호 하나만 있으면 생년월일, 나이, 출신연대, 성별, 최초 발급지역, 번호의 위조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는 태생적인 취약점도 함께 갖는다.

 2016년 10월 방통위 국감자료에 의하면 최근 3년간 유출된 개인정보가 무려 3천500만 건으로 국민 10명당 7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민사상의 피해뿐만 아니라 생명을 잃거나 상해 및 성폭력 피해를 부르는 사건사고 또한 비일비재하다. 이와 관련 2015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불가능하도록 한 주민등록법이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 불합치 선언을 했고, 그 연장선에서 지난달 30일부터 주민등록번호 변경제도가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주민번호 유출’ 입증 자료를 첨부해 주민등록지 내 시군구청에 가서 변경 신청하면, 행정자치부 산하 주민등록번호 변경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후 시장·군수·구청장 명의로 주민등록번호를 확정·변경하게 된다. 하지만 의외로 아직까지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본보(6월 9일자) 보도다. 피해를 입었다는 증빙서류를 구비하는 것이 까다로운데다 심의 기간도 평균 6개월에서 최대 9개월까지 소요되는 법 조항 때문인 듯싶다. 결국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기꺼이 바꿀 것인가’라는 점이 제도의 실효성 여부를 결정짓는 중대한 요인으로 보인다. 물론 본 제도는 주민번호 노출로 인한 2차적인 피해를 예방토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1차 예방을 하려면 ‘주민번호가 민간거래에 아예 사용되지 않도록 관행과 규정을 바꿈으로써 범죄와의 연결성을 원천차단’하는 별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애초부터 주민번호 자체가 노출되지 않게 하고, 노출됐다 하더라도 신속히 변경해서 추가 피해가 없도록 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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