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뜨거운 여름에 피어서 9월이면 시드는 꽃
필 때는 강렬한 태양을 먹고 자라지만
시들 때는 처음 느끼는 가을의 냉기로 소멸된다
때가되면 가뭄이 대지를 말려도 그 냥 피는 꽃이다
여름 내내 보라색의 싱그러움으로 나를 달래주다
가을의 소리가 첫 들리면 꽃망울은 땅으로 떨어지고
땅속에 묻힌 도라지는 나의 자양분으로 헌신한다
2017년 여름 내내 장마철에도 비가 오지 않았어도
어김없이 이 도라지 꽃은 또 그 고운 자태로 피었다
이것이 역사요 진리다 대대손손 이어오는 자연의 역사다
어제 조상들이 사시다가 오늘 자연으로 돌아갔듯이
오늘 나는 이 모습 또 우리 가문의 도라지 꽃으로 피었다
이렇게 인간의 도라지 꽃을 내 후손도 먼 훗날 피울 것이다
더욱더 나를 놀라게 하는 엄청난 진실은
혹시나 만에 하나 열에 하나 천에 하나
인류가 이룩한 이 문명이 다 없어진다 해도
저 도라지 꽃은 지구촌 어딘가에 또 필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문명과 자연의 심오한 차이인 것
이 것을 깨달은 사람만이 진실한 삶을 살 것이다
이 것을 깨달은 존재들만이 의미있는 족적을 남길 것이다
■ 고려대 연구교수이자 푸른정치연구소 소장인 박 시인은 2000년도에 등단, 7권의 시집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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